양질의 음식을 충분히 먹고 자란 아이들은 웬만한 잔병은 걸리지 않는다. 반면 어린 시절 배를 곯아 영양이 부족했던 아이들은 성장하면서도 병에 잘 걸린다.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은 사람은 마음에 뒷심이 있어서 웬만한 어려움은 여유롭게 넘기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작은 일에도 쉽사리 좌절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철철이 보약, 끼니마다 고기를 과다하게 먹고 자란 아이들은 자칫 큰 병에 걸리기 쉽다는 것이다. 과다한 사랑, 지나친 물질적 풍요,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가 다 해주는 과보호는 아이를 망가뜨린다.
오토바이로 배달 일을 하는 청소년들을 어른들은 흔히 문제아로 여긴다. 개중에는 밤이면 폭주족으로 변하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배달 청소년들을 모두 문제아로 여기는 것은 위험하다. 일을 하는 아이들은 거친 이미지와 달리 어렵게 번 돈 한 푼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기에 건전한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 상담가들에 따르면 진짜 심각한 문제아들은 오히려 집에서 다 챙겨줘서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들 가운데 많다고 한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자라는, 과잉보호를 받는 아이들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그저 공부만 하면 집안일을 할 필요도, 돈을 벌 필요도 없다. 아버지는 교육비와 용돈을 대고 필요한 것은 다 사준다. 어머니는 밥도, 빨래도, 청소도 해주고 심지어 스케줄까지 짜준다. 요즘은 대학에 가도 어머니들이 수강 신청을 대신 해주고 성적이 안 나오면 교수에게 항의한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해 구직할 때도 면접 시험장에 따라간단다.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부모에게 고마워할까? 평생을 뒷바라지했는데 이젠 자식들이 자기 말은 듣지도 않는다고 푸념하는 어머니들이 꼭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자식들한테 바라는 게 하나도 없어요. 다 자기들 잘되라고 한 것이지.” 그러고는 또 “내가 자기들을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상반된 이야기를 한자리에서 한다.
자녀들에게 모든 걸 다 주었지만, 아니 모든 걸 다 줘서 버림받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어느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물려준 재산을 모두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었지만, 자식들이 입을 싹 씻고 돌아섰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한테 통장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얼마나 많이 들어 있는지 밤에도 옆구리에 꼭 끼고 주무신다는 것이다. 자식들은 다시 선물 보따리를 들고 할머니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커서 집을 넓혀야 해요.” “사업이 어려워요.” 그러나 할머니는 단 한 푼도 자식들에게 주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나 죽은 뒤 가져가라.” 자식들은 할머니 비위를 맞추느라 무진 애를 썼다.
드디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기 무섭게 자식들은 할머니의 통장을 펼쳐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한 푼도 없는 빈 통장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에 통쾌하게 한 방 먹이고 돌아가신 할머니는 무조건 주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신 게 아닐까.
혹여 자녀 손에 물이라도 묻힐까 걱정하고, 하나라도 더 주지 못해 늘 안달인 부모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과보호이고 집착이다. 자녀가 자신을 떠나서는 살지 못하게 하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그런 부모가 사망하면 자녀는 수십년을 헤맨다. 모든 것을 다 해주던 존재가 사라져버리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 배우자는 잘 안다. 자기 배우자가 효자가 아니라는 것을.
자녀를 올바르게 키우고 싶다면 다 주지 말고 적절하게 주어야 한다. 정신의학자 스콧 펙은 말했다. “사랑은 지각 있게 주는 것이며, 또 지각 있게 안 주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아이가 고생하는 건 못 보겠다며 다 해주려 든다면 그것은 자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병 때문이다.
홍성남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