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열치열. 속리산에 올랐다. ‘道不遠人 人遠道 山非離俗 俗離山(도불원인 인원도 산비리속 속리산)’이라고 할 때의 그 속리산이다. 정상이 문장대라고 하기에 文章으로 짐작했더니 文藏이었다. 세조도 이곳에 올라 신하들과 강론하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세속 도시에서는 폭염경보가 요란한데, 이속의 산은 의외로 시원하다. 잎자루가 잘록한 잎은 부채 같아서 그늘도 베풀고 바람도 준다.
기진맥진. 정상에 도착했다. “도는 사람을 떠나지 않았는데 사람이 도를 멀리하였고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세속이 산을 떠났네, 하여 이름 붙여진 俗離山”이란 글귀를 등에 짊어지고 표지석이 서 있다. ‘文藏臺’.
당연지사. 땡볕 속의 바위를 보는데 문득 시경 소아편의 ‘남산유대(南山有臺)’가 생각났다. 인문학당 ‘상우’를 이끄는 우응순 선생님의 ‘시경 강의’ 녹취록을 풀어 출간하는 팀의 말석에서 귀동냥하고 있다. 말의 시원 같은 시경. 마침 그제 배운 내용이었다. 이런 臺를 속리산 정상에서 이렇게 생생하게 만날 줄이야! 강의록의 한 대목이다. “대(臺)는 흔히 누대(樓臺)로 알려져 있지만 여기서는 풀이름으로 쓰였습니다. 사초라고도 하는데 곧 향부자(香附子) 종류를 가리키지요.”
속리문장. 어찌 보면 이 바위도 그 언젠가는 먼지로 닳는다. 돌은 없어지고 이름만 남겠지만, 작고 여린 야생화로서의 臺는 한해살이풀이기에 해마다 부지런히 끊임없이 피고 진다. 한 해만 살아서 매년 사는 풀. 아니 대단하다 할 수 없는 臺. 그렇게 보자니 속까지 돌로 꽉 찬 문장대 표지석이 대궁 끝에 무거운 허공을 받들며 핀 한 송이 꽃 같지 않겠는가.
남산유대. 이날 속리산 꽃산행에서 본 건 솔나리, 바위채송화 등등의 장한 야생화들. 발바닥의 진동 끝에 정상에 올라, 풍광을 눈에 담고, 그냥 표지석 하나 보고 왔네, 싱겁게 끝날 수도 있겠지만, 말의 못자리 같은 시경을 빌려, 망외의 궁리 하나 붙들고, 산속에서만이라도 즐거운 군자처럼 겨우 더듬더듬 내려왔다. “南山有臺 北山有萊 樂只君子 邦家之基 樂只君子 萬壽無期(남산에는 향부자가 있고/ 북산에는 명아주가 있도다/ 즐거운 군자여/ 나라와 집안의 터전이로다/ 즐거운 군자여/ 만수하여 기약이 없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