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흔들리고 홈플러스가 무너진다. 한 시대를 상징하던 이름들이 차례로 응급 경보와 부고를 알린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이 시대의 이름조차 짓지 못했다. ‘뉴노멀’이라는 말조차 낡았다. 아니, 끝난 것이다. 새로운 표준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시대. 매년이 아니라 매달, 매달이 아니라 매일이 새로운 시대다.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많은 이들이 더불어민주당의 낙승을 예상했다. 코스피 9000시대, 역사상 최고의 영광이라는 말도 돌았다. 그러나 민심의 밑바닥은 달랐다. 반도체 기업의 6억원대 성과급 소식은 국민 다수에게 자부심이 아니라 박탈감으로 읽혔다. 지수는 오르는데 내 삶은 왜 제자리인가. 여기에 인공지능(AI)이 내 일자리를 대체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겹쳤다. 영광의 선전과 불안의 체감, 사람들은 그 사이에 서 있다.
첫 번째 질문. 부는 어디에서 창출되는가. 지금까지는 인간의 노동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노동에 세금을 매기고 노동을 전제로 복지를 설계했다. 그러나 이제 젠슨 황과 일론 머스크는 범용인공지능(AGI)의 도래를 말한다. 사무 영역의 상당 부분을 AI가 대체할 것이다. 숙련공도 전문가도 예외가 아니다. 대다수가 노동시장의 출구로 밀려나는 시기가 온다. 문제는 그 이후가 아니라 그 사이다. 일자리는 사라졌는데 새로운 분배구조는 도착하지 않은 시기, 이 ‘데스밸리’를 어떻게 건너느냐가 미래의 운명을 가른다.
두 번째 질문. 세금은 왜 노동에 매기는가. 근로소득세는 인간이 부를 만들던 시대의 설계물이다. 부의 창출이 인간에게서 기계와 알고리즘으로 이동한다면 과세의 대상도 따라 이동하는 것이 조세의 제1원칙에 부합한다. 로봇세·데이터세·디지털세가 그 답이고, 정부가 AI 인프라·에너지·통신 같은 핵심 시스템에 공공지분으로 참여해 수익을 나누는 방안도 같은 원리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돈이 흐르는 방향이 바뀌었을 뿐이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질문. 그렇게 걷은 돈을 나누는 것은 시혜인가. “왜 일도 안 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느냐”는 반문은 기본소득 논의를 20년째 묶어둔 족쇄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AI는 무엇으로 학습했는가. 우리가 매일 쏟아낸 데이터, 수십년 축적된 언어와 지식, 공적 자금으로 깔린 전력망과 통신망 위에서 오늘의 AI가 성장했다. 그것은 모두의 것이지만 누구의 것도 아닌 공유자산, 즉 ‘코먼스’(Commons)다.
코먼스에서 나온 수익을 그 주인인 인류에게 돌려주는 것은 복지가 아니라 배당이다. 주주가 배당에 미안해하지 않듯, 기본소득은 불로소득이 아니라 ‘기본배당’이며 인간답게 살 최소한을 보장하는 생존권이다. 극소수에게 부가 몰리는 시대에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게 하는 안전핀이자 관계 인프라에 대한 투자다. 생존의 압박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학습하고 창작하고 창업하며 서로를 돌보는 사회. 최재천 교수가 말한 ‘직업창출위원회’식 상상력도 그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배당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가 AI를 소유하고, 어떤 데이터로 학습시키며, 그 수익을 어떻게 걷고 나눌지 정하는 규칙, 즉 새로운 시대의 AI 거버넌스가 함께 서야 한다. 배당이 열매라면 거버넌스는 그 열매를 맺는 나무의 뿌리다. 데이터 주권과 알고리즘의 투명성, 공공의 감독을 세우지 못하면 코먼스의 과실은 다시 소수에게 빨려 들어간다. 기본소득이 희망의 언어라면, 거버넌스는 그 희망을 지탱하는 제도의 문법이다. 우리는 둘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다행히 이것은 진영의 의제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 청년배당과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으로 이미 실험의 이력을 쌓았다. 놀랍게도 국민의힘 강령 1-1은 “국가는 국민 개인이 기본소득을 통해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다”고 명시한다. 야당이 반대할 명분이 없는, 이 분열의 시대에 남은 마지막 공통분모다. 머스크마저 보편적 기본소득을 말하는 지금, 세계 AI 3위권이자 전 국민 디지털 인프라를 갖춘 대한민국은 이 실험을 감당할 나라다. 다른 나라가 머뭇거릴 때 어젠다를 선점하는 것, 그것이 준비된 나라의 특권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뤄낸 이 나라가 다음에 답할 질문은 명확하다. 그렇다면 기계가 번 돈은 누구의 몫인가. 이 질문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데스밸리는 이미 시작됐고, 우리를 건너게 할 다리는 아직 놓이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의 임기는 그 다리의 첫 교각을 세울, 어쩌면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이다.
신인규 정당 바로 세우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