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을 샀다
장선환 글·그림
문학동네 | 60쪽 | 1만8000원
누구에게나 “내가, 내가!”를 외치던 어린 시절이 있다. 신발 끈도 내가 묶어야 하고, 물도 내가 따라야 한다. 엘리베이터 버튼도 내가 눌러야 직성이 풀린다. 어른 눈에는 아슬아슬하기만 한 그 고집은 사실 세상을 향해 내딛는 가장 용감한 걸음이다. 쏟고 넘어지고 깨뜨리면서도 아이들은 기어이 제 몫의 하루를 완성해낸다.
아빠의 생일상을 준비하는 날, 동하는 장 보러 가는 엄마를 따라나선다. 그리고 탐스러운 수박들을 마주한다. 동하는 아빠도 누나도 좋아할 거라며 수박을 사자고 조르더니, 기어코 ‘내가’ 들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제 몸통만 한 수박을 품에 꼭 안고 집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아차! 팔에 힘이 빠지고 만다. 수박은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깨진다.
맑게 번지는 수채에 도톰한 오일파스텔을 얹은 장선환 작가의 삽화는 여름날 고향집을 그대로 옮겨온 듯 따스하다. 시장의 열기는 달아오르는 주황빛으로 표현하고, 수박 더미의 초록색은 온 세상을 물들인다. 작가는 동하가 수박을 놓친 순간, 사방으로 튀어오른 물방울을 색색 꽃잎처럼 그려내기도 했다.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그림이 먼저 동하를 다독이는 듯하다.
엄마가 토닥여도 동하의 풀죽은 마음은 영 나아지지 않는다. 온 가족이 저녁을 먹고 수박이 밥상에 올라왔을 때, 아빠는 다정히 말한다. “이 큰 수박을 시장에서부터 들고 왔구나. 쩍 하고 터진 걸 보면 얼마나 잘 익었을까?” 그제야 아이도 수박을 한입 베어 문다. 입안 가득 달고 시원한 행복이 들어찬다. 동하가 수박을 고르고, 안고, 끝내 놓쳐버린 그 모든 순간에는 가족을 향한 사랑이 담겨 있다. 그리고 서툰 사랑을 온전히 받아주는 가족이 있기에 아이의 실패는 상처가 아닌 추억이 된다. 이렇게 동하는 제 몫의 하루를 완성한 셈이다. 돌아보면 우리 여름날의 가장 눈부신 장면들도 그렇게 남아 있다. 깨지고 서툴렀지만, 함께 나누어 끝내 달았던 순간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