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집권 노동당의 새 대표로 선출돼 차기 총리 자리를 확정한 앤디 버넘(56)은 지방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당내 지지 기반을 다져온 정치인이다. 잉글랜드 북서부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을 지내며 지역 경제와 교통 개혁을 이끈 그는 지난달 보궐선거를 통해 중앙 정치에 복귀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총리직에 오르게 됐다.
앤디 버넘 차기 영국 총리가 1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노동당 대표 선출 기념 특별 전당대회를 마치고 떠나고 있다. 버넘은 오는 20일 총리로 취임할 예정이다. EPA연합뉴스
‘북부의 왕’에서 총리까지
리버풀 출신인 버넘 대표는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언론계에서 일하다 20대 초반 정계에 입문해 2001년 처음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 노동당 정부에서 재무부 수석 부장관, 문화·미디어·체육부 장관, 보건장관 등을 지내며 중앙정부 경험을 쌓았다. 노동당 대표 선거에는 두 차례 도전했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고, 2017년 의원직을 내려놓은 뒤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버넘은 시장 재임 기간 지역 교통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투자 유치를 통해 전국 평균을 웃도는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잉글랜드 북부 산업지대와 남부 수도권의 불균형 해소를 줄곧 강조하며 북부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입지를 굳혔다.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은 계기는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당시 보리스 존슨 보수당 정부가 제시한 봉쇄 보상안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중앙정부와 공개적으로 맞섰고, 이 과정에서 ‘북부의 왕(King of the North)’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노동당은 스타머 총리 체제가 흔들리자 버넘을 차기 간판으로 내세우는 데 빠르게 의견을 모았다. 메이커필드 보궐선거에서 극우 성향 영국개혁당 후보를 크게 꺾으며 경쟁력을 확인한 버넘은 당내 주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당 대표 경선에서도 경쟁 후보 없이 추대에 가까운 방식으로 선출됐다.
‘맨체스터주의’ 앞세운 온건 좌파
영국 북서부 메이커필드 보궐선거 투표가 진행된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앤디 버넘 당시 노동당 후보가 당 사무실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정치 성향은 노동당 내 온건 좌파로 분류된다. 키어 스타머 총리보다는 왼쪽에, 제러미 코빈 전 대표보다는 중도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기업 활동을 존중하면서도 주택·교통·교육·인프라 등 주민 생활과 직결된 권한을 지방정부에 대폭 이양해야 한다는 이른바 ‘맨체스터주의’를 핵심 철학으로 내세운다. 공공 통제를 강화해 물가를 안정시키고 생활비 부담을 줄이는 한편, 중소기업 세제 지원과 인프라 투자 확대, 국방비 증액 등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17일(현지시간) 대표 취임 연설에서 지방분권과 지역 균형발전을 국정 운영의 핵심 과제로 제시하며 “맨체스터에 제2 총리실을 설치해 지역 경제정책을 조율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오해하지 말라. 나는 그레이터맨체스터의 친기업 시장이었던 것처럼 친기업적인 노동당 대표가 될 것”이라며 기업과의 협력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버넘 대표는 이어 “우리는 녹색당보다 더 녹색당이 되거나, 영국개혁당보다 더 영국개혁당이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과거처럼 보수당의 옷을 입지도 않겠다”며 “노동당다운 정부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노동당원을 정직시키거나 징계하지 않겠다”며 당내 통합을 약속했다.
경제난·분열된 민심…험난한 시험대
다만 우려도 적지 않다. 지방 행정 경험은 풍부하지만 중앙정부를 이끌거나 국가 정책을 총괄한 경험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경기 둔화와 취약한 재정, 좌우 포퓰리즘 확산 등 영국이 직면한 복합 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만큼 짧은 준비 기간이 새 정부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버넘에 대해 공개적으로 많은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매우 진보적인 인물일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영국 BBC는 “두 사람이 정치적으로 스펙트럼의 정반대에 서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