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관리 위해 ‘고가 주택 대출 부담금’ 제안
부동산 금융토론회서 제안, 지난해도 나온 아이디어
“고가 주택 대출 억제 효과, 대출 사회적 자본” vs.
“실수요자 막대한 비용부담, 현금 부자만 피해가”
지난 15일 금융위원회가 주최한 ‘부동산 금융정책 경청 토론회’에서 메인 발제자로 나선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거시건전성 관리부담금’을 제안하고 있다. KTV 중계화면 갈무리
최근 정부 부처별로 연이어 개최된 부동산 토론회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부담금을 추가로 부과하자는 아이디어가 제안된 이후 시장 안팎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부담금’ 구상은 가계부채를 줄이고, 덩치가 커진 가계부채가 야기하는 금융 불안정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출이 필요한 실수요자들에게 막대한 비용이 떠넘겨지고, ‘현금 부자’들만 피해갈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논란은 지난 15일 금융위원회가 주최한 ‘부동산 금융정책 경청 토론회’에서 비롯됐다.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거시건전성 관리부담금’을 제안했다. 쉽게 말해, 집을 살 때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이자 이외에 국가에 부담금을 내게 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택 가격에 따라 부담금 비율을 다르게 매기자는 것이다. 집값이 5억원 이상 15억원 미만이면 대출액의 1%를, 15억원 이상 주택은 대출액의 2%를 부담금으로 매기는 식이다.
이 계산대로라면 15억원 아파트를 사면서 6억원 대출받으면 대출액의 2%인 1200만원을 부담금으로 내야 한다. 다만 5억원 미만 주택은 부과 대상이 아니다. 대출 없이 현금으로만 집을 샀을 때도 부담금이 없다.
김 연구위원이 부담금 부과를 말한 배경은 주택을 살 때 대출 비용을 크게 높여서 고가 주택을 사려는 수요 자체를 누르자는 차원이었다.
그는 현재 집을 사서 얻는 이익이 대출 이자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대출 수요가 꺾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대출 수요를 줄이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한국은행이 부동산 시장 하나만 보고 기준금리를 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당국이 대출금에 부담금을 추가로 얹어 실질적으로 대출 금리를 올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자는 아이디어였다.
김 연구위원은 “고가 주택에 거시건전성 부담금을 부과하면 차주들은 상당한 부담을 느낄 것이고, 이에 따라 고가 주택에 대한 가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며 “이러한 방식으로 고가 주택이 우리나라 주택시장을 이끌며 가격 상승의 촉매제가 되는 부분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상 ‘준조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출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부분에 대해 일정 수준의 비용을 부과하는 것이 사회적 정의에도 부합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날 처음 나온 아이디어는 아니다. 지난해 7월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제기했다.
강 위원은 ‘가계부채 관리체계의 구조적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주택의 매매 또는 전세 여부와 관계없이 대출 금액이 일정 수준을 초과할 경우 부담금이 차등적으로 증가하는 누진적 거시건전성 부담금 제도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고액 대출자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부과”하자고 주장했다.
‘부담금’ 주장은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닌데도 이 같은 방안이 알려지자 SNS상에선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실수요자들에게는 충분한 대출을 해줘야 한다”, “공급을 하라니까 세금 걷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등 비판이 쏟아졌다. “대출은 내 신용이나 자산을 담보로 능력껏 빌리는 것인데 언제부터 사회적 자본이 됐냐”며 대출을 사회적 자본으로 보는 시각에 발끈하는 누리꾼들도 있었다.
일각에선 찬성의견도 나온다. 그만큼 가계부채 문제가 금융 안정성을 위협하고, “대출이 집값을 자극하다보니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5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부동산 금융정책 국민의견 경청 토론회에서 패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토론회 당일에도 김원장 삼프로TV 부사장은 이 제안에 “열심히 건전하게 금융생활을 해서 높은 신용점수를 받아 대출을 받았는데 1200만 원을 더 내라고 하면 어떤 국민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냐”며 반박하기도 했다.
대출이 필요 없는 ‘현금 부자들’은 부담금을 내지 않아 형평성 논란도 제기된다.
심형석 미국 IAU 교수 겸 우대빵연구소 소장은 통화에서 “대출을 받는다는 이유로 부담금을 매긴다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최근 금리도 올랐는데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이 더 어려워진다. 돈 많은 분들은 사실 별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현재 대출 규제를 일부 풀어주는 조건으로 이 부담금 제도를 대안으로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청년층을 중심으로 대출 규제에 대한 불만이 워낙 크다 보니, 대출 규제는 일부 완화해 주되 고가 주택에 대해서는 부담을 더 지우는 대안을 생각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전 교수는 이 경우 투기 억제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봤다. 그는 “기존 대출 규제를 풀면서 부담금을 부과하면 고가 주택을 사려는 사람들은 부담금을 내고서라도 대출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집값 안정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