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식 추기경이 곁에서 지켜 본 프란치스코와 레오 14세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이 18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코스트홀에서 ‘유흥식 추기경이 만난 두 교황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 당시 대전교구장이던 유흥식 추기경은 새로 선출된 뒤 현장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악수라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교황 주변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마침 유 추기경과 함께 공부했던 파라과이 출신 주교가 그를 제의실 앞쪽으로 이끌었다. 미사를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곳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교황님. 한국에서 230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왔습니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짧게 화답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옆에 있던 동료 주교가 대화 시간을 재 봤더니 정확히 13초였다. 이후 유 추기경은 교황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듬해 대전에서 열릴 아시아 청년대회에 교황을 초청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을 찾았다. 유 추기경을 놀라게 한 것은 교황이 13초간의 만남과 대화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이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열고 자신이 곁에서 지켜본 두 교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람을 기억하며 빠르게 결단했고 레오 14세 교황은 상대의 말을 오래 들으며 함께 답을 찾아가는 지도자였다.
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빠르게 판단하고 결단하는 분”이라면서 “그 결단은 언제나 사람에게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한국 방문도 마찬가지였다. 초청 편지를 받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에 가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며 비교적 빠르게 방문을 결정했다고 한다.
방한 당시 충남 서산 해미성지를 찾았을 때도 교황은 이름조차 남지 않은 순교자들의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사람의 이름과 사연을 기억하는 능력도 남달랐다. 아르헨티나에서 사목하던 한국인 성직자의 이름까지 기억하면서 짧은 만남의 기억들도 쉽게 잊지 않았다고 유 추기경은 전했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뒤 열린 콘클라베에서 선출된 레오 14세 교황에 대해 유 추기경은 “잘 들으시는 분”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두 사람은 레오 14세가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주교 후보자들을 심사하는 회의에서 자주 만났다. 여러 시간 이어지는 회의에서 당시 로버트 프리보스트 추기경(현 레오 14세)은 자신의 견해를 내세우기보다 다른 이들의 의견을 끝까지 듣고 꼼꼼히 메모했다고 한다. 교황이 된 뒤에도 그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추기경들에게 개인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알리며 언제든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했고 교회의 현안을 논의하는 대화의 시간도 늘려갔다. 유 추기경은 “교황님께선 ‘여러분이 저를 뽑았으니 함께 가야 한다. 나 혼자 갈 수는 없다’고 이야기하셨다”면서 “혼자 결정하기보다는 함께 가려는 분”이라고 덧붙였다. 빠른 직관과 결단으로 길을 열었던 프란치스코 교황과 달리 레오 14세는 여러 사람을 논의 과정에 참여시키며 방향을 찾는다. 전임 교황이 기억을 통해 사람과의 거리를 좁혔다면 현 교황은 경청을 통해 관계를 쌓아가는 셈이다.
두 교황의 방식과 리더십은 다르지만 사람을 향한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었다. 유 추기경은 “두 교황님을 가까이서 만난 것이 제 삶을 바꿔놓았다”면서 “이 분들이 보여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강연에서는 ‘땀의 순교자’로 불린 최양업 신부를 가톨릭이 공식적으로 공경하는 ‘복자’로 선포하기 위한 절차도 언급됐다. 한국인 두번째 사제인 최 신부는 천주교 박해 당시 전국을 걸어다니며 신자들을 돌보다 과로와 병으로 선종했다. 유 추기경은 “지난 3월 기적 심사를 통과 하면서 9부 능선을 넘었다”면서 “올해 안에 남은 절차가 진행 되면 내년 봄쯤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