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는 비행기 안에서 버튼 한 번이면 현지 시간으로 바뀐다. 하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 잠드는 시간과 깨어나는 시간은 물론 배가 고픈 시간, 체온이 가장 낮아지는 시간, 잠을 유도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분비되는 시간까지 여전히 출발한 나라의 리듬을 따른다.
낮에는 참을 수 없이 졸리고, 밤이 되면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유럽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시차 적응’의 시간이다. 흔히 말하는 ‘시차 적응(Jet lag)’은 단순히 피곤한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간대에 맞춰 몸속 생체시계를 다시 설정하는 과정이다. 시차 적응에 숨겨진 과학을 정리했다.
왜 유럽에서 돌아오면 더 힘들까
손목시계는 비행기 안에서 버튼 한 번이면 현지 시간으로 바뀐다. 하지만 우리 몸은 그렇지 않다. 잠드는 시간과 깨어나는 시간은 물론 배가 고픈 시간, 체온이 가장 낮아지는 시간, 잠을 유도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분비되는 시간까지 여전히 출발한 나라의 리듬을 따른다.
그 이유는 뇌 시상하부에 있는 시교차상핵(SCN) 때문이다. 몸속 생체시계 역할을 하는 이 작은 조직은 수면과 각성, 체온, 호르몬 분비 등 하루의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사령탑’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생체시계가 정확히 24시간에 맞춰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미국 하버드 의대의 수면의학 권위자인 찰스 차이슬러 교수 등을 비롯한 시간생물학 연구에 따르면, 외부의 빛이나 시계 같은 시간 정보를 모두 차단한 환경에서 사람의 내인성 생체시계는 평균 약 24.2시간의 주기로 움직인다. 즉 우리 몸은 본래 24시간보다 조금 긴 하루를 기준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생체시계는 잠드는 시간을 늦추는 변화(phase delay)에는 비교적 쉽게 적응하지만, 잠드는 시간을 앞당기는 변화(phase advance)에는 취약하다. 평소에는 매일 아침 햇빛이 생체시계를 24시간 주기에 맞춰 조금씩 동기화하기 때문에 이런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장거리 비행으로 여러 시간대를 한꺼번에 건너뛰면 생체시계가 새로운 시간에 즉시 적응하지 못하면서 시차가 발생한다.
시차를 가장 빨리 극복하는 방법은?
정답은 ‘햇빛’이다. 시간생물학에서는 햇빛처럼 생체시계의 시간을 맞춰주는 신호를 ‘자이트게버(Zeitgeber·시간 신호)’라고 부른다. 특히 아침 햇빛은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고 생체시계를 앞으로 당기는 역할을 한다.
유럽에서 한국처럼 동쪽으로 이동했다면 아침 햇빛을 충분히 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 반대로 한국에서 유럽처럼 서쪽으로 이동했다면 저녁 햇빛이 생체시계를 뒤로 늦춰 적응을 돕는다. 전문가들이 도착 첫날 숙소에만 머물지 말고 가볍게 산책하라고 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시차는 얼마나 지나야 사라질까. 항공업계에는 “시차 1시간을 극복하는 데 하루가 걸린다”는 말이 있다.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지만 생체리듬 연구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칙이다. 다만 개인차는 크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생체시계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멜라토닌 분비와 깊은 수면 시간이 줄어들면서 같은 8시간의 시차라도 적응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끝으로 시차는 여행할 때만 생기는 걸까. 그렇지 않다. 독일 시간생물학자 틸 뢴네베르크 교수는 평일과 주말의 수면 시간이 크게 달라 생체시계가 흔들리는 현상을 ‘사회적 시차(Social Jet Lag)’라고 이름 붙였다.
평일에는 밤 11시에 자다가 주말에는 새벽 2시에 잠들고 오전 11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하면 몸은 마치 다른 시간대로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혼란을 겪는다. 월요일 아침이 유독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오래 보는 습관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청색광은 뇌에 ‘아직 낮’이라는 신호를 보내 멜라토닌 분비를 늦추고 생체시계를 뒤로 미룬다.
결국 해외여행 뒤 찾아오는 시차와 사회적 시차는 모두 몸속 생체시계와 외부 시간의 리듬이 어긋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유지하고, 햇빛을 충분히 쬐며, 식사와 활동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생체시계를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