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반등 주도층, 경제력 갖춘 기혼 30대
소득 상위 30% 상승, 하위 30%선 변화 미미
저출생 흐름 근본적 전환으로 보기 어려워
인구 큰 ‘1900년대생 효과’ 끝나면 또 하락 우려
출산 직전·직후 혜택 벗어나 유인 범위 넓혀야
서울에서 증권사에 다니는 A씨는 지난해 3월 결혼했다. 부모님에게 전세보증금 2억원을 지원받으며 원래 계획보다 결혼을 앞당길 수 있었다. 올가을 첫 아이 출산도 앞두고 있다. A씨는 “집 문제가 해결되니 결혼을 미룰 이유가 없었다”며 “자연스럽게 아이까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남광주에서 화물 운송 기사로 일하는 B씨는 3년 전 결혼했다. 수입이 들쭉날쭉한 데다 부모님 도움을 받기도 어려워 아이를 낳는 것을 계속 미루고 있다. B씨는 “아내가 SNS에 올라 온 태아 초음파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을 보면 눈치가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며 “내게 아이는 점점 더 먼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년 연속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가임 기간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상승했지만 이런 현상이 경제력을 갖춘 일부 30대와 인구 규모가 큰 1990년대생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저출생 흐름이 꺾였다고 낙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출산·육아뿐만 아니라 결혼 지원 정책을 함께 설계해 가임기 청년들을 혼인 단계로 유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19일 취재를 종합하면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출생·사망통계(잠정)’에서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0명이었다. 2023년 0.72명, 2024년 0.75명에 이어 또다시 상승했다. 출생아 수 역시 25만4500명으로 전년보다 1만6100명(6.8%) 늘었다. 15년 만에 최대폭 증가다. 정부는 “정책 시너지와 인식 변화가 만들어낸 반등”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출산 관련 데이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난 2년간의 합계출산율 상승은 구조적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나타난 일시적 반등에 가까워 상승 추세에 올라탔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누가 아이를 낳고 있는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가 지난 1월 공개한 보고서 ‘최근 출산율 반등 흐름의 주요 특징과 원인 분석’(연구책임 계봉오 국민대 교수)에 따르면 2024년 이후 출산율 반등을 주도한 것은 ‘이미 결혼한,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30대’였다.
반등의 직접 경로는 배우자가 있는 30대 여성의 출산율 상승이었다. 이들의 출산율 상승은 2023년 대비 2024년 합계출산율을 0.04명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합계출산율 상승 폭(0.03명)보다도 큰 수치다. 20대 등 다른 집단에서는 오히려 출산율이 하락했지만, 이미 결혼한 30대 여성 출산 증가세가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가팔랐다는 의미다.
다만 그 상승은 소득에 따라 다시 한번 갈렸다. 건강보험 행정자료를 분석한 해당 보고서는 소득 상위 30%의 합계출산율이 2023년 0.84명에서 2025년 0.95명으로 오른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하위 30%에서는 뚜렷한 반등 없이 하락 폭만 다소 둔화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특징은 혼인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계 교수팀 분석에 따르면 35~39세 저소득층의 유배우율은 계속 하락했지만 상위 소득 집단에서는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했다. 유혜정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인구연구센터장은 “한국은 비혼 출산 비중이 작아 결혼이 사실상 출산의 선행 단계”라며 “혼인 단계의 격차가 출산 기회의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종합하면 최근 반등은 결혼과 출산의 문턱이 전반적으로 낮아져 새로운 청년들이 대거 진입한 결과라기보다, 이미 혼인한 30대 가운데 경제적 기반을 갖춘 이들의 출산이 늘어난 결과에 가깝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출산율 반등은 그동안 여건은 됐지만 아이 낳기를 망설이던 사람들이 움직인 결과일 수 있다”며 “이 경우 이번 반등을 저출생의 근본적이고 중장기적인 추세 전환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1990년대생이 지나가면
실제로 출산율은 과거에도 일시적으로 반등했다가 꺾인 적이 있다. 합계출산율은 2005년 1.08명에서 2012년 1.30명까지 올랐지만, 이듬해 1.19명으로 떨어졌다. 2015년 이후에는 장기 하락 국면에 들어섰다. 전문가들은 미뤄졌던 혼인과 출산이 뒤늦게 이뤄지는 ‘이연 효과’가 작용했지만, 주거·일자리·교육비 등 결혼과 출산을 어렵게 하는 기본 조건이 달라지지 않으며 상승세가 이어지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최근 반등에도 과거처럼 유효기간 있는 요인이 겹쳐 있다는 점이다. 이는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미뤄졌던 혼인과 출산이 나타나는 ‘이연 효과’와 비교적 규모가 큰 1990년대생이 주된 혼인·출산 연령대에 들어선 ‘인구 효과’다. 유 센터장은 “1990년대생은 엄마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은 마지막 세대”라며 “이들이 혼인과 출산 대열에 합류하면서 일시적으로 전체 출생아 수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른바 ‘1990년대생 효과’는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1996~1998년생까지만 해도 인구 규모가 컸지만, 불과 몇 년 뒤인 2001년에는 연간 출생아 수가 60만명 아래로 떨어졌고 2002년에는 50만명 선마저 무너졌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합계출산율이 지금보다 25% 이상 뛰지 않는 한 전체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것을 막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즉 출산 연령대 여성이 줄면 합계출산율이 올라도 실제 태어나는 아이 수는 줄어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최근 반등만으로 저출생 흐름이 꺾였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출산율 반등이 구조적 추세 전환으로 이어지려면 새롭게 혼인과 출산에 진입하는 청년의 범위가 넓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지원책은 이미 혼인과 출산 문턱 가까이에 선 가구의 결정을 돕는 데 맞춰져 있다. 대표적 지원책인 신생아 특례대출은 일정한 소득과 신용, 원리금 상환 능력을 갖춘 가구를 대상으로 한다. 육아휴직 역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직장가입자에게 접근성이 높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혼과 출산이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적 조건을 갖춘 계층의 생활양식처럼 비치기도 한다. SNS에 올라오는 한강이 보이는 신혼집과 태교 여행, 산후조리원 사진은 이러한 인식을 더욱 강화한다. 이 연구원은 “여유 있는 부모에게 자산을 이전받은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이 두드러지면서 가족을 꾸리는 일이 중산층 이상의 삶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저출생 흐름을 꺾으려면 출산 직전과 직후에 혜택을 집중하는 지금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 센터장은 “단순 출산 지원에만 집중하면 그 전제조건인 혼인 단계로 청년들을 유인하기 어렵다”며 “결혼 지원과 출산 지원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저출생은 취업과 독립, 결혼, 출산으로 이어지는 청년의 생애 경로가 막혀서 생기는 문제”라며 “일자리와 주거, 교육 구조까지 함께 바꾸지 않으면 현재의 반등을 지속적인 변화로 이어가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