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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분자8기

입력 2026.07.19 19:57

수정 2026.07.1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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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현장 취재 덕분에 고창 여기저기를 한참 걸었다. 수박·땅콩·고추·복분자·바지락·백합·김이 자라는 땅과 해안부터 경이로웠다. 곳곳의 고인돌 무더기 또한 놀랍기만 했다. 고창읍성·무장읍성·흥덕읍성 터를 찾는 동안은 동학농민전쟁의 아우성이 그야말로 쟁쟁했다. 그 뒤로 김성수, 김연수 집안의 한국 자본제 연대기가 엉겼다. 신재효와 서정주가 이룬 문학사도, 김소희와 김여란이 이룬 음악사도 자꾸 돌아보였다.

장어가 빠질쏘냐. 2024년 말 이래 치어가 풍년이라 장어값이 폭락했지만 장어구이의 매혹이 어디 갈 리 없다. 현장에서, 손질한 장어를 사 장인어른께 부치던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탄식했다. “그저 입에 닿을 때 한 점 드시자!” 수박도 그렇다. 이제 수박은 고창에서 1년에 세 번까지 재배한다. 한 해 ‘수박-멜론-수박’ ‘수박-작은수박-수박’ 하는 순서로 사계절 최고품질 수박이 난다. 그 사이에 최고품질 멜론이 있다. 농민, 독농, 국가가 손잡고 아등바등 농업 기술을 끌어올린 덕분이다. 그저 입에 닿을 때 한입 가득 베어들 무시라.

복분자는 어떤가. 복분자는 검붉게 잘 익었을 때 따 한 해 내내 먹는다. 수확은 ‘고창 복분자와 수박축제’가 열리는 6월이 절정이다. 7월은 끝물 수확까지 마치고, 유통과 가공을 고민하는 때이다. 갈무리 마친 최고품질 생복분자가 7월 여러분을 기다린다. 복분자. 엎을 복(覆)에 동이분(盆). 글자 두고 오줌발이 어쩌니 하는 소리도 다 하릴없다. 이 말은 한문에서 낯설지 않다. ‘복분’은 ‘엎어 놓은 동이’의 뜻이다(‘자[子]’는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원래 ‘복분’은 햇살 같아야 할 임금의 지혜가 미치지 못해 생긴 신하 또는 백성의 억울함이나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비유한다.

엎은 동이를 뚫을 햇살은 없다. 엎어 놓은 동이 모양에 견줘 그 이름이 붙었는지, 정말 요강 뒤집는 신통한 효능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런 소리 없이도 복분자는 스스로 소담하다. 일찍이 서유구(1764~1845)는 <임원경제지>의 ‘만학지’ 속 복분자 항목에 이런 문장을 남겼다.

“복분자에는 여덟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①꽃은 희고 열매는 붉어 과수원이나 밭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다. ②달콤새큼 상큼해 입을 즐겁게 하고 갈증을 풀어준다. ③손님상에서 붉은 옥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멋진 장식물이 돼준다. ④햇빛에 말려 가루를 내면 쌀가루나 밀가루 반죽 바탕의 별미를 만들 수 있다. ⑤토질을 가리지 않고 자생하니 번거롭게 가꾸지 않아도 된다. ⑥이 땅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어디에서나 난다. ⑦음력 5월 열매를 맺으니 나무나 풀의 열매 가운데 가장 먼저 익는다. ⑧기운을 더하고 눈을 밝게 하며 오장을 조화롭게 하고 피부를 윤택하게 한다.”

서유구는 문헌에서 순무의 여섯 가지 이로움(六利), 감의 일곱 가지 빼어남(七絶), 고구마의 열세 가지 좋은 점(十三勝)을 예시한 다음, 거기 맞춰 복분자의 여덟 가지 특별함(八奇), 곧 8기를 위 같이 썼다. 그래, 익숙한 수사법이니 오줌발 말씀도 요강 말씀도 못할 소리는 아닐 테다. 다만 저 8기보다 설득력 있는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저 한 문단이 복분자에 부칠 만한 소리인지 살펴들 보시라. 보시다, 복분자가 입에 닿으면, 그저 잘 드시자. 드시며 한여름 잘 나시기 바란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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