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는 훼손된 존재감을 만회하고 내가 여기 존재하는, 현존의 충만감을 상상적으로 만끽하는 정치적 행위다. 조롱하는 자는 조롱당하는 자보다 권력적으로 더 우위에 선다. 혐오는 위에서 나보다 못한 아래를 내려다볼 때 느끼는 ‘불쾌한’ 감정이며, 그 불쾌감을 조롱의 언어로 내뱉을 때 나는 권력의 우위에 서 있다는 ‘쾌감’을 느끼게 된다. 혐오는 불쾌의 감정이지만 그 표현인 조롱은 권력적 쾌감을 주는 것이다. 혐오와 조롱은 쾌와 불쾌를 주고받으며 짝을 이룬다.
나보다 더 권력이 강한 사람도 조롱하는데 무슨 말이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조롱할 때는 그가 아무리 나보다 권력자라고 하더라도 조롱하는 그 점에서만큼은 나보다 더 ‘못난’ 사람이다. ‘무섭노’ 논쟁에서 스스로 다수 대중의 조롱을 산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전형적이다. 그는 리센느 멤버 원이의 ‘무섭노’ 논쟁에 들어갈 때부터 “리센느 야호”라고 말하는 순간까지 줄곧 비웃음을 샀고 조롱당했다. 다수 대중이 보기에 지질하고 어리석은, 즉 못난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못났기에 추하고, 추하기에 혐오스럽다.
이처럼 조롱은 나보다 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서도 못나고 추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다중에게 권력관계를 역전시키는 순간을 만끽하는 쾌감을 준다. 더구나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다중이 하게 되면 상대는 발가벗겨져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상대가 꼼짝달싹도 못하게 하는 것, 완전히 무력한 상태에 빠뜨리는 것이야말로 권력이 주는 핵심적인 쾌감이다.
대중, 분노보다 손쉬운 혐오를 선택
존재감은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정치를 하는 강력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는 다른 사람에게 내 의지를 관철하는 행위이다. 나의 의지가 관철될 때마다 사람은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현존의 충만함을 느끼는 것이다. 권력관계를 통해 상대를 피동적인 존재로 만들어 나의 능동성을 고양하는 것이 권력이며 정치다. 나의 능동성과 너의 피동성 사이의 쟁투가 권력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다중의 조롱과 혐오는 문화적이기보다는 상대의 능동성을 박탈하는 정치적인 행위다.
상대의 능동성을 박탈하는 것으로 자신의 능동성이 고양되며 효능감을 만끽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대상이 약자들이다. 약자들이 조롱에 무력화할수록 그들은 더욱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어 혐오를 정당화한다. 인간이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자신의 존엄이며 그 존엄은 자신의 자유, 즉 능동성을 지키는 것에서 온다. 능동성을 포기하는 순간 그는 최소한의 자존심도 없고 한없이 비겁하고 비열한 존재이기에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혐오는 가해자의 효능감을 고양하는 대가로 약자의 존엄과 존재 자체를 파괴한다.
정치적 효능감을 고양하는 조롱과 혐오가 가능할 때 사람들은 분노하지 않는다. 다중은 혐오를 택한다. 혐오와 달리 분노를 통해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권력에서 아래에 있다는 점을 확인할 뿐이며 그때마다 존재감의 훼손만 경험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감정으로서의 분노 자체가 혐오와 달리 권력의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감정이다.
차별이나 혐오와 같은 부당한 관계에 대한 저항이 분노다. 분노할 때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아래에 있고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분노는 부정의한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러나 분노를 통해서는 좌절감과 존재감의 훼손을 경험할 때가 더 많다. 분노는 성공 확률이 매우 낮은, 그에 반해 에너지 소모는 매우 큰 감정이다. 부당하고 부정의한 현실을 바로잡는 것은 권력관계, 즉 구조를 바꾸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분노는 매우 버거운 정치적 감정이다. 이 감정을 일상적으로 지속하라는 것은 매우 무리한 요구일뿐더러 나아가 존재를 파멸로 이끈다. “혐오 말고 분노하라”는 진보·좌파의 ‘반복적’인 요구가 다중에게 외면받는 이유다.
혐오가 정치를 지배할 땐 공화국 몰락
혐오와 분노를 넘어 제로섬게임으로서의 정치 말고 다른 정치의 길이 있다. 우정이다. 무슨 꿈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공화정의 근본적 토대가 ‘시민적 우정’이다. 오직 서로를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역량이 있는 동등한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우정’에 기초해서만 공화국은 성립한다. 우정이 아닌 혐오가 정치를 지배할 때 공화국이 위기에 빠지고 무너진다.
바로 이 점에서 진보와 보수를 떠나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서 명시한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혐오를 부추기고 조롱의 말을 확산하는 정치인을 정치에서 추방하는 것이다. “재명아 봤지? 들었지?” 팻말을 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같은 정치인 말이다. 이런 정치인 하나 추방하지 못하는 정치의 무력함과 무책임에 대해 아무리 지치더라도 분노해야 한다.
엄기호 청강문화산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