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EA 사찰’ 표준 체계도 미적용
안전장치 미비 땐 핵 확산 우려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강화된 사찰 체계를 적용하지 않은 채 우라늄 농축을 허용하는 핵 협정에 잠정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18일(현지시간) CNN은 이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사우디와의 민간 핵 협정 초안을 마련했지만,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국제적 안전장치는 포함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사우디와의 협상 발표 당시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이 “우리는 민간 핵 협력 합의에 도달했다”며 핵확산 방지 원칙을 확고히 지키겠다고 밝힌 것과 배치된다.
협정은 대통령의 서명 이후 의회에 제출돼 검토를 받아야 하지만, 아직 서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배경으로는 지난 2월 시작된 미·이란 전쟁이 거론된다. 이란과의 전쟁에서 핵무기 개발 억제를 명분으로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과 사우디의 우라늄 농축을 허용하는 협정 내용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의회 내에서는 백악관이 초당적 반대 결의로 협정 발효가 저지될 가능성을 우려해 서명을 미루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초 의회 관계자들에게 협정의 기본 틀을 설명하면서 일정 수준의 국내 우라늄 농축이나 플루토늄 재처리를 허용하는 특별 조항이 포함돼 있다고 소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는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핵심 물질을 확보하는 두 가지 주요 경로다. 사우디의 우라늄 농축 조항에는 미국이 부과한 일부 조건이 포함돼 있지만, 구체적 제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고 CNN은 전했다.
합의안 초안은 사우디에 ‘IAEA 추가의정서’ 채택도 요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IAEA에 신고된 시설뿐 아니라 미신고 핵 활동이 의심되는 시설에 대해서도 보다 폭넓은 사찰 권한을 부여하는 협정이다. 대신 핵 안전 확보는 미국과 사우디 양자 협정을 통해 이뤄질 예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우라늄 농축·전환·핵연료 제조·재처리 등 핵확산 위험이 큰 분야에 추가적 안전조치와 검증 수단을 적용한다”고 설명하면서도 추가의정서에 따른 표준화된 IAEA 감독 체계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충분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이번 협정이 사우디에 핵무기 개발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역내 라이벌인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할 경우 사우디도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의 비확산 담당 부국장 안드레아 스트리커는 추가의정서가 적용되지 않으면 “IAEA가 신고되지 않은 의심 시설을 사찰할 권한이 줄어든다”고 우려했다. 그는 양자 간 핵 안전 협정에 따라 미국이 사우디를 통제하는 방식이라 하더라도 사우디 영토에서 우라늄 농축이나 재처리를 허용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며 “사우디가 관련 시설을 국유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은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사우디의 핵 시설을 폭격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체결한 핵 협력 협정에서 UAE가 IAEA의 강화된 감독을 수용하고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포기하도록 했다. 핵 전문가들은 이 협정을 민간 원자력 협력의 ‘골드 스탠더드’로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