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출신 이주노동자 혼다 쑤사왓(29)이 지난 14일 경북 영양군 입암면 농업근로자 기숙사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김현수 기자
“화장실 같은 시설이 좋지 않을까 봐 걱정했어요. 그런데 새 건물에, 시설도 좋아서 놀랐습니다.”
경북 영양군 입암면 ‘농업근로자 기숙사’에서 지난 14일 만난 라오스 출신 혼다 쑤사왓(29)이 말했다. 지난해 영양에서 3개월간 일했던 그는 올해도 계절근로자로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 번 돈으로 라오스에서 자동차를 샀다는 혼다의 책상에는 삐뚤빼뚤한 한글 자음이 빼곡하게 적힌 연습장이 놓여 있었다.
혼다는 “한국어를 잘하면 일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쉬는 날마다 공부하고 있다”며 “숙소가 좋아 내년에도 영양에서 다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생활하는 니펀(34)도 “방이 넓고 에어컨을 마음껏 켤 수 있어 좋다”며 “일할 때는 덥지만, 숙소에서는 마음 편히 쉬고 있다”고 말했다.
영양군이 50억원을 들여 조성한 이 기숙사는 지난해 완공돼 시범 운영을 거친 뒤 올해 정식 운영에 들어갔다. 연면적 1396㎡, 지상 3층 규모로 객실 18개를 갖춰 최대 65명까지 살 수 있다. 폐교 등 기존 건물을 고쳐 이주노동자 숙소로 활용한 사례는 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땅을 매입해 기숙사를 지은 것은 전국 처음이라고 영양군은 설명했다.
방에는 침구와 개인 사물함, 에어컨, 베란다 등이 갖춰져 있다. 화장실과 샤워시설도 따로 마련돼 있다. 객실 밖에도 층마다 공동세탁실과 공용 화장실·샤워실이 설치돼 있다. 1층에는 식당과 다목적실이 있고 다목적실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이용하는 탁구대도 있다.
이곳에는 지난달 입국한 라오스 국적 이주노동자 20명이 생활하고 있다. 다음 달에는 필리핀 국적 이주노동자 20명도 합류할 예정이다. 영양군은 베트남과 라오스 출신 결혼이민자 등을 통역 인력으로 배치해 농가와 이주노동자의 의사소통을 돕고 있다.
영양군 농업근로자 기숙사 전경. 영양군 제공
라오스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지난 14일 경북 영양군 입암면 농업근로자 기숙사 공동주방에서 지역 농민이 나눠준 배추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 영양군 제공
기숙사에 머무는 이주노동자들은 농가 요청에 따라 일손이 필요한 현장에 배치되는 공공형 계절근로 방식으로 일한다. 장마와 농작물 생육기가 겹치는 7월에는 일손 수요가 비교적 적지만, 지역 대표 작물인 고추 수확이 시작되는 8월부터는 일손을 필요로 하는 농가가 늘어난다.
식사는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준비한다. 영양군이 입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직접 현지 음식을 해 먹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다. 영양군이 고기와 생선 등 식자재를 마련하면 노동자들이 입맛에 맞게 라오스식 음식을 만들고 점심 도시락도 챙긴다. 지역 농민들이 사과와 자두, 배추 등 농산물을 나눠주기도 한다.
농가도 부담을 덜었다. 과수원을 운영하는 김모씨(60대)는 “예전에는 숙소와 식사까지 농가가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걸 모두 챙겨야 했는데 지금은 부담이 훨씬 줄었다”며 “폭염 사고도 잦은데 노동자들이 숙소에서는 시원하게 쉰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놓인다”고 말했다.
경북연구원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국내 취업자의 3~4%에 그치지만, 산업재해 사망자 중 약 12%를 차지한다. 지난해 경북에서도 구미 건설현장과 포항 제초 작업 현장 등에서 3주 사이 이주노동자 3명이 온열질환으로 숨졌다.
권용석 경북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주노동자의 폭염 문제는 인권뿐 아니라 경북 농업과 산업을 지탱하는 노동력을 지키는 문제”라며 “농촌 이주노동자가 냉방시설을 갖춘 공간에서 충분히 쉬도록 공공기숙사와 쉼터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양군은 전체 면적이 815.9㎢로, 서울(605.21㎢)보다 넓다. 그러나 인구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1만5972명에 불과한 대표적인 지방소멸 지역이다. 김성훈 영양군 주무관은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사실상 농사를 짓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지역 입장에서는 농번기 일손을 채워주는 고마운 손님”이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이 경북 영양군 입암면 농업근로자 기숙사 앞 수전에서 농작업을 마친 뒤 장화를 씻고 있다. 영양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