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광장에 모여 오색의 응원봉을 들고 아이돌의 최신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소수자들의 차별 증언을 들으면서 공감을 하고, 깃발을 흔들면서 행진을 하던 때에도 의심이 있었다. 정치인들이 했던 약속들이 지켜질 것인가 하는 불안감 같은 것 말이다.
광장에 불이 꺼졌고, 다시 선거가 치러졌고,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다. 내란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는 절실한 요구는 모든 민생 문제를 뒤로 미뤄도 되는 것처럼 착시를 일으켰다. 마침 등장한 이재명 정부는 비정상의 국가를 정상화하고, 국무회의도 생중계하면서 국민들과 적극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외교 무대에서는 세계 정상들과 나란히 하는 모습에서 국격이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여러 어려운 대내외적인 조건에서도 정부가 열심히 해왔다는 평가를 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지금도 이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을까. 더욱이 정부와 함께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여당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짜증마저 난다. 누가 적통인지를 놓고 다투는 데 혈안이 돼 있고, 검찰 보완수사권을 둘러싸고 다른 법안에 이름을 올린 의원들에게 좌표를 찍어 조리돌림을 하고 있다. 당내에서 기득권이라고 여겨지는 한 인사는 대통령을 대놓고 직격하고, 정부의 실패를 예언하고 있다. 이렇게 분열하고, 저질스러운 싸움박질을 해도 다음 정권은 따놓은 것처럼 오만하게 행동한다. 하루하루 물가고에 은행 이자를 걱정해야 하고, 일자리, 돌봄, 젠더에서 차별을 겪으며 살아가느라 지쳐 있는 서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이러니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에 역전당했고, 대통령 지지율도 처음으로 50% 이하로 내려앉았다.
약속 파기, 문재인 정부와 닮은꼴
광장에서 ‘야5당과 시민사회’는 동지였다. 그러나 광장의 동지에서 집권여당이 된 다음에는 야4당·시민사회와 한 약속을 저버렸다. 이전 문재인 정부가 촛불광장에서 했던 약속을 파기한 과정과 다르지 않다. 수많은 약속들은 ‘나중에’로 미뤄졌고, 되레 박근혜 정권 때보다 불평등 정도가 심화되었고, 결국은 권력을 윤석열 정권에 넘겨주고 말았다. 20대 대선에 나온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 후보와 싸운 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 때문에 졌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지난 ‘빛의 광장’에 나왔던 시민들은 문재인 정권에 배신당하고 실망했음에도 다시 광장에 나와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그때 광장에 나온 시민들을 두고 “기득권 세력의 지배 질서에서 배제되고 차별받던 피해자 집단이 국민의 압도적 다수를 대변하는 광장 공동체의 중심에 위치한 것이다. 그렇게 응원봉 투쟁 속에서 2030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의 주체 형성 과정이 확인되었다”고 조돈문 교수는 평가했다. 그런 시민들은 “지금은 다 같이 ‘으쌰으쌰’ 하지만, 이 사태가 끝나도 (소수자) 차별은 남을 테고 우린 여전히 투쟁할 게 많다”고 말했다. 그런 예측처럼 세상은 바뀌었다고 하는데 자산 격차와 차별과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 아닌가.
이재명 정부는 성장주의를 정책 기조로 내걸고 있다. 올해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발표한 “지방주도 성장, 모두의 성장, 안전한 성장, 문화가 이끄는 성장, 평화가 뒷받침하는 성장” 등 5대 성장주의 전략이 이재명 정부의 정책 방향을 잘 설명한다. ‘3대 메가프로젝트, 대체불가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을 보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자랑스러워질 정도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주식시장이 불장이라고 할 때 주식 한 주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고, AI 데이터센터가 곳곳에 들어서고 휴머노이드가 도입된다는 소식에 살기 더 힘들어지겠구나 생각하는 청년이 있고, 전월세도 구할 수 없는 처지의 서민들이 있다.
다시 배신당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 성장주의에서 대전환을 해야 할 때다. 초과세수가 사상 최대라고 하는 때에 불평등 완화를 위해서는, 평등사회를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문제를 놓고 정부도, 집권여당도 대안을 제시하고, 토론하고, 정책을 만들고, 실행해가면 좋겠다.
‘이제 K자 성장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분명한 비전을 정부가 그리고 집권여당이 만들어 보여주면 안 되겠는가. 서로 나쁘게 싸우는 모습으로 정치에 대한 환멸만 키우지 말고,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는 정치를 기대한다. ‘우리’는 다시 배신당하고 싶지 않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