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참사 14주년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해 5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피해자들의 유품이 놓여 있다. 문재원 기자
법원이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롯데쇼핑과 제조사에 6억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취지의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 측이 소송을 제기한 지 10년 만에야 내려진 결정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재판장 최종진)는 지난 20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이모씨와 그 자녀가 가습기 살균제 ‘와이즐렉’을 공급한 롯데쇼핑과 제조사에 낸 손해배상 소송 조정 절차를 연 뒤 조정이 불성립하자 피해자들에게 6억3000만원을 공동 배상하라는 취지의 화해를 권고했다. 법원은 소송을 계속하는 것보다 화해하는 게 당사자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할 때 직권으로 화해 권고를 할 수 있다.
조정 절차에선 이씨 자녀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입은 신체적 장애 등에 대해 롯데쇼핑 등이 얼마나 배상해야 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이씨 측은 2016년 5월 롯데쇼핑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씨의 아내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 피해자이고, 당시 영아였던 자녀는 자라면서 만성 폐 질환을 앓게 됐다. 이에 이씨는 아내 사망과 자녀의 폐 질환 등에 대한 위자료와 손해배상을 롯데쇼핑과 제조사에 청구했다.
재판부는 앞서 2024년에도 한 차례 조정 절차를 밟았으나, 당시에도 조정은 불성립했다. 이후 올해 초까지 자녀의 폐 질환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신체 감정 등이 이뤄졌다. 감정 결과서가 모두 나오자 재판부는 지난 5월 판결을 선고하기로 했다가, 사건을 다시 조정에 회부했다.
양측이 화해 권고 결정을 받아들이면 10년 동안 이어진 재판이 마무리된다. 재판상 화해가 성립하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생긴다. 다만 법원의 화해권고 결정에 양측이 이의제기하면, 재판부는 정식 재판 절차를 거친 뒤 판결을 내야 한다. 노병용 전 롯데마트 대표는 2018년 대법원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 등에 대해 금고 3년 형을 확정받고 만기출소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1994년부터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폐 손상 등 대규모 인명 피해를 일으킨 사건이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간의 인과관계가 확인됐고, 2014년 당시 환경부가 피해 구제 절차를 시작했다.
대법원은 2024년 6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국가 책임을 공식인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부터 피해 구제 절차를 국가 주도 배상체계로 전면 전환하고, 피해자들의 학업, 병역, 사회진출 등 생애주기에 따른 피해배상을 위한 종합 대책을 내놨다. 지난해 기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초중고 학생 914명, 병역판정 대상은 2029년까지 632명, 20~30대 1085명으로 추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