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만나 반갑게 얘기를 나누는 한 인문학자 선생님이 얼마 전 내게 중국의 고전 <장자>에 나오는 사상가 혜시의 문장을 알려줬다. “至大無外 謂之大一(지대무외 위지대일)”, 우리말로 옮기면 “지극히 큰 것은 바깥이 없다. 이를 일컬어 대일, 큰 하나(大一)라고 한다”는 뜻이다. 물리학에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모은 큰 전체를 일컬어 유니버스(universe)라고 한다. 한번 생각해보라. 유니버스를 둘러싼 경계 밖 무언가가 유니버스 안 무언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유니버스의 정의와 모순이 된다. 애초에 유니버스의 경계를 너무 작게 설정했을 뿐이다.
유니버스의 경계를 바깥으로 계속 확장하는 상상의 과정을 떠올려보라. 경계 밖에 무엇이 있든 유니버스 안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때까지 확장하고 나면 그 안 모든 것이 유니버스다. 그렇다면 유니버스는 어떤 형태로든 에너지와 정보가 바깥에서 들고 날 수 없는 고립계일 수밖에 없다. 유니버스가 고립계라는 것은 유니버스의 정의를 다른 말로 적은 동어반복과 다름없어 그 자체로 자명하다. 과학, 특히 물리학에서 의미 있는 유니버스는 하나, 그 안에 우리가 존재하는 바로 이 유니버스뿐이다. 모든 존재는 이 커다란 유니버스를 함께 공유한다. 내가 소멸해도 유니버스에서 소멸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유니버스 밖 무언가에 대한 주장은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관찰될 수 없으므로 반증이 불가능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유니버스 밖에는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지극히 큰 유니버스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유니버스의 접두어 ‘uni-’는 ‘유일한 하나’의 뜻이 있다. 지극히 크면 바깥이 없고, 커다란 유니버스는 그 자체로 유일하다. 유니버스가 대일(大一)이다.
지극히 큰 대일(大一)에 이어 <장자>에 등장하는 혜시의 글귀 “至小無內 謂之小一(지소무내 위지소일)”은 “지극히 작은 것은 안이 없다. 이를 일컬어 소일, 작은 하나(小一)라고 한다”의 뜻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적당히 큰 무언가를 앞에 놓고 점점 잘게 조각내는 과정을 떠올려보라. 잘게 나누는 이러한 과정이 무한히 이어질 수 있을까? 자르고 자르는 과정을 계속하다 보면 더 이상 자를 수 없는 무언가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한 이가 바로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다. 더 이상 자를 수 없다는 의미인 데모크리토스의 atomos는 현대 물리학의 atom, 즉 ‘원자(原子)’라는 개념으로 발전해 이어졌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원자도 안이 있어 근본(原)이 아니므로 더 잘게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원자마저도 잘게 나누는 과정을 계속 이어가 도달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아주 작은 것에는 내부가 없어야만 한다. 혹여 내부가 있다면 그 안에 더 작은 무언가가 있을 테니 더 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현대 물리학의 표준적인 이론 체계에서 전자와 쿼크 같은 근본 입자는 크기가 없어서 내부도 없다. 마치 유클리드 기하학의 점(點)과 같은 존재다. 물리학의 근본 입자나 수학의 점처럼 지극히 작은 것은 크기가 없어 안이 없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점은 크기가 없어서 색칠할 수 없다. 한 점을 다른 점과 색으로 구분할 수 없다. 수학의 점은 딱 하나, 위치라는 속성만을 가진다. 지극히 작아 속이 없는 두 전자도 위치가 다를 수는 있어도 정확히 동일하다. 물리학에서 전자가 머리카락이 없다고 비유하는 것도 같은 얘기다. 작아서 속이 없는 존재는 하나같이 완전히 동일하다.
작아서 안이 없는 입자 둘이 충돌할 때 충돌 전후 에너지 손실이 없어야 한다는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충돌로 바뀔 내부가 아예 없으니 에너지의 일부를 흡수할 아무런 메커니즘이 없다. 바닥에 떨어뜨린 탁구공이 몇번 튀다가 결국 멈추는 이유는 탁구공과 바닥을 구성하는 물질 내부에 무언가가 변해서다. 사라진 에너지는 탁구공과 바닥을 구성하는 여러 입자의 마구잡이 열운동으로 바뀐다. 내부가 없는 두 전자는 충돌 전후 정확히 같은 에너지로 움직인다.
물리학의 표준 모형은 만물을 이루는 근본 입자를 크게 둘로 나눈다. 힘을 받는 입자와 힘을 전달하는 입자다. 그런데 힘을 받는 입자만도 자그마치 12개나 된다. 물리학자 중에는 12라는 큰 숫자가 불만인 사람이 많다. 지극히 커서 바깥이 없는 유니버스가 딱 하나여서 대일(大一)이듯, 지극히 작아 안이 없는 궁극의 근본도 소일(小一)처럼 딱 하나인 것은 아닐까?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