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법에는 금융투자에 형법 246조(도박죄)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주식투자에 도박 성격이 있지만, 기업의 투자금 조달이라는 순기능 때문에 도박죄 처벌 예외로 한 것이다. 그러니 주식시장은 국가가 허락한 도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처럼 그 말이 실감나는 때가 없다.
정부는 판을 키우려 작정한 것 같다. 금투세를 도입하지 않은 데 이어 ‘삼전닉스’ 레버리지 ETF를 허가한 것이 단적이다. 그 결과 위험을 떠안고 빚을 내 투자하는 개인투자자가 너무 많아졌다. 정부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과 함께 추진하는 용인 반도체 산단 및 3대 메가프로젝트는 일부 기업에 자원과 국토 이용 권리를 몰아준다는 점에서 주식시장의 도박장 성격을 더 강화할 우려가 크다.
모든 투자를 죄악시하자는 건 아니다. 어떤 상품과 서비스가 더 생산될 필요가 있다고 보는 판단을 누가, 어떻게 내리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그 주체는, 흩어져 있는 데다 정보가 제약된 개인투자자도, 기업의 노동자도, 시설이 들어설 지역의 주민도 아니다.
생태적 한계 도전하는 메가프로젝트
결국 화석연료를 더 많이 태울 것
정부가 기후위기 악화 앞장서는 무책임
속도전 대신 민주적 숙의와 토론 필요
AI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는 에너지와 물 이전에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하다.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 산업의 작동 방식은 AI 개발업체, 반도체 기업,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 금융권의 복잡하게 얽힌 순환 출자와 대출에 있다. AI 자체를 통해서는 이익이 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끊임없이 부풀리는 장밋빛 전망 자체가 자금 조달의 근거가 되고, 그 자금은 새로운 지출과 대출을 확대한다. AI발 성장은 결국 이 부문 부채의 연쇄 고리가 추동한 것이다.
AI 투자는 상당 부분 비은행권 사모대출 시장이 주도한다. 메가프로젝트 발표 이튿날 SK가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의 투자를 받아 2조원 규모의 에너지 기업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KKR은 전 세계 거대 인프라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사모펀드이다. 대통령 이재명이 지난해 9월 AI 투자 협력을 위해 만난 래리 핑크 회장의 블랙록도 그런 사모펀드이다. 래리 핑크는 공적연금 민영화 등 공공성 약화 교의를 설파해온 인물이다.
문제는 월가의 이 ‘그림자 권력’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점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5월 이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 규제가 강화된 틈을 타 부상했으며, 금융공학이 만들어낸 가장 복잡하고 불투명한 순환적 자금 조달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투자와 대출의 연쇄 고리가 어딘가에서 잘못되면 AI 산업에 몰린 연기금, 은행 자금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의미다.
사모펀드의 속성을 이해하려면 홈플러스 사태 때 MBK의 행태를 보면 된다. 그 대상이 노동이든 토지나 물이든 이익을 추출하고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떠나는 행태를 보인다. 피해와 회복 비용은 사회가 떠안는다.
메가프로젝트는 생태적 한계 때문에라도 성공할 수 없다. 기후위기로 농업용수조차 부족한 현실에서 가용한 물을 모두 반도체에 끌어쓰면 농업은 어떻게 될까.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원칙을 허물고 위험한 원전 건설로 회귀하려 하는데, 결국 화석연료를 더 많이 태우는 식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산불, 폭염, 수해로 약자들에게 더 큰 피해를 주는 기후위기를 더 가속화할 이 사업을 정부가 앞장서 추진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이재명은 메가프로젝트 발표 후 “국토 전체를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탈바꿈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전 국토가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로 덮이는 것이 좋은 일일까. 이런 감수성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지금 AI 투자는 LLM의 연산력을 키우는 데 집중돼 있다. 그런데 과연 그 연산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그것이 우리 삶을 좋게 만드는지 성찰할 여유는 없다. 투자자와 기업인들은 그 대열에 끼지 않으면 패배자가 된다고 을러대며 분위기를 한 방향으로 몰아간다. AI 투자는 인류의 극소수가 결정한, 실현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거대한 도박이라 할 수 있다. 이 정도로 중대한 결정은 속도전이라는 무서운 말을 쓰면서 서두를 것이 아니라 민주적 숙의와 토론을 거친 뒤에 내려야 한다. 용인도 광주도 아직 첫 삽을 뜨지 않았다.
손제민 정치·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