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는 앙증맞다. 같은 박과 과일인 수박, 멜론에 견줘 한 손에 들어가는 아담한 크기와 경계심을 풀게 하는 노란색 덕분이다. 그렇지만 작고 여린 참외가 품은 맛의 스토리는 어떤 과일보다 크고 풍성하다.
참외 영어명의 하나는 ‘코리안 멜론’이다. 우리나라 생산량이 압도적인 까닭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26 농업전망보고서’에서 우리나라가 전 세계 참외의 99.9%를 생산한다고 분석했다. 이런 높은 점유율을 가진 한반도의 재화는 역사적으로 인삼과 인공지능(AI) 시대를 지탱하는 핵심 부품으로 떠오른 고대역폭메모리(HBM) 정도다.
원래 우리나라 참외는 수박과 멜론처럼 녹색이었다. 녹색이던 참외를 노랗게 만든 것은 20세기 초 일본이었다. 1930년대 ‘황금 마쿠와’(노란 참외를 지칭하는 일본어)를 개량하기 시작했다. 이어 개량종과 재래종인 녹색 국회멜론이 교배된 은천참외(일본명 긴센마쿠와)가 등장했다. 1957년 은천참외가 한국에 들어왔고 1975년 신은천참외로 개량된 뒤 노란 참외는 재래종 참외를 빠르게 대체했다. 노란 참외는 부드러운 맛의 녹색 재래종보다 당도가 높고 식감이 아삭했다.
우리 농업인들의 치열한 집념도 더해졌다. 아삭함을 높이기 위해 러시아 멜론인 ‘듸냐’를 가져왔다. 듸냐는 일반 멜론과 달리 암수 꽃이 따로 피는 단성화로 품종 개량이 수월했다. 1984년 금싸라기, 2003년 오복꿀처럼 식감과 저장성이 향상된 품종이 출시됐다. 오복꿀 이후에도 당도, 아삭함 그리고 베타카로틴·엽산 같은 영양 성분을 강화한 새로운 품종이 쏟아졌다.
한국인의 아삭한 맛에 대한 선호는 집착에 가깝다. 바삭함의 극치를 보여준 한국식 닭튀김인 ‘치킨’은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매운 고추를 피망과 교배해서 아삭한 오이고추를 선보였다. 이런 집착은 어디에서 왔을까?
음식학자들은 한국인이 1만년 가까이 먹어온 쌀에 주목한다. 우리 쌀은 찰진 전분인 아밀로펙틴 함량이 높은 자포니카 품종이다. 음식학자들은 한국인들이 맛에서 치아의 저항감을 중시하게 된 것은 밥알의 찰짐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반찬인 나물과 김치 역시 아삭함이 중시됐다. 한국인들은 일상식에서조차 입안의 저항감과 이 과정의 음향적 효과가 주는 감각적 카타르시스를 추구해왔다. 참외는 그런 한국인의 음식 취향이 응축된 과일이다.
한국인의 1인당 참외 소비량은 2018년 2.5㎏에서 꾸준히 늘어 2025년에는 4.2㎏에 이른다. 생산량도 최근 5년간 증가 추세다. 2010년부터 연평균 4.0% 소비량이 감소하고 있는 수박이나, 보합세인 멜론에 견줘 양호하다. 수출도 증가세다. 2025년 전년 대비 수출량이 57.6%나 늘었다. 68%가 일본으로 수출됐다.
노란 참외를 만들었던 일본이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참외를 키우지 않는다. 1960년대 소득 수준이 오르면서 참외에서 멜론으로 눈을 돌렸다. 입안에서 씹히는 참외의 아삭함보다 녹아내릴 듯한 멜론의 부드러움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한류의 영향과 1인 가구의 증가로 한국 참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역시 종자 수출을 통한 현지 재배로 한국 참외의 아삭함을 만나고 있다. 세계인들이 참외의 아삭함에 담긴 한국 맛의 서사에 더 깊게 빠져들길 바라본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