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이야기, 그런 내용은 쉽게 읽힌다. <1938 타이완 여행기>는 목차부터 마지막까지 먹보 여자 둘의 음식 이야기로 짜여 있다. 일제 강점기에 제국인이 식민지를 여행한다는 불편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화자인 아오야마 치즈코의 대단한 먹성과 해맑음이 갈등을 날려버린다.
한 예로 치즈코의 안내를 맡았던 총독부 직원 미시마는 제국인이지만 타이완 본섬에서 나고 자라 그곳을 아끼는 복잡한 속내를 품고 있다. 마치 바나나처럼 겉껍질은 일본 제국인이어도 그가 평생 먹고 마신 음식은, 그리하여 그의 몸을 이루는 물질은 모두 타이완에 속하는 것이다(한편 바나나는 아시아인이면서 백인이길 원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멸칭으로 종종 쓰이는 표현이다). 그런데 치즈코는 미시마가 본섬 출신이라는 사실을 듣고는, 그 뒤의 복잡한 사정을 헤아리기는커녕 참 잘된 일이라며 크게 반긴다. 타이완의 맛있는 음식을 잘 알 테니 안내자로 적임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 앞에 차별은 없다. 진정한 미식가라면 음식을 편견 없이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타이완은 지리적, 역사적으로 식문화의 다양성이 크게 발달한 지역이다. 면적에 비해 서식하는 생물종의 수가 많아 생물다양성이 풍부하고, 절묘한 위치 덕분에 작물을 두루 수확할 수 있다. 쌀만 보아도 인디카로 불리는 장립종, 자포니카로 불리는 단립종, 그리고 찹쌀을 만드는 찰벼 3가지를 모두 재배할 수 있다. 더욱이 해상 유통이 발달하고 여러 지역에서 대대적으로 이민자가 유입되었으며, 네덜란드, 스페인, 청나라, 일본 등의 식민 통치를 받으며 거듭 변천을 겪었다. 타이완에는 공식적으로 16개 민족이 거주하는 중이다. 타이완 섬에서 벌어진 충돌은 좋은 사건이든 나쁜 사건이든 계속하여 맛있는 음식을 탄생시켰다. 작중에서 치즈코는 ‘타이완식 카레’를 먹으며 인도 커리나 일본 카레와 또 다른 본섬의 독자적인 요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타이완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루러우판’은 전쟁 후에 태어난 요리다. 살코기를 구할 돈이 없던 사람들이 돼지고기 부스러기를 맛있게 먹는 요리법을 고안했다. 고기를 짭짤하게 양념하여 푹 익히고, 따끈한 밥 위에 올려 먹는 것이다. 쌀밥 먹을 줄 아는 독자라면 침을 삼킬 만한 대목이다. 꼭 루러우판을 먹어 보지 않았더라도 다른 요리로 미루어 맛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안을 행복하게 채우고 위장을 든든하게 위로하는 그 맛을 누가 모를까.
그러나 작중에서 치즈코는 루러우판 노점을 보고도 먹지 못한다. 치즈코가 아무리 주관이 뚜렷하고 키가 ‘삼나무처럼’ 크다 해도, 당시 사회 풍토상 남자들 사이에 끼어 밥을 먹는 행동을 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이처럼 <1938 타이완 여행기>는 음식의 힘을 빌려 당대 여성의 현실로, 식민지라는 상황에서도 자체적인 문화를 형성해 온 타이완의 역사 속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더군다나 ‘역사 백합 소설’이라는 표현답게, 천진난만하지만 강하고 사랑스러운 치즈코와 그녀의 통역사이자 요리사가 된 아름답고 속 깊은 여성 왕첸허의 관계가 애절하게 펼쳐진다. 이 소설은 처음에는 맛있게 넘어가고, 곱씹을수록 깊이에 감탄하게 되는 진미다.
심완선 SF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