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조위, 중대본 회의록 열람 ‘내용 검토’
참고인 조사 등 통해 관련 진술 확보
이상민은 “국가 책임 문제”부터 걱정
참사 초기부터 ‘책임 회피’에만 급급
유재형 10·29 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2과장, 박용덕 조사2과 팀장이 28일 특조위 위원회 회의실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은송 기자
윤석열 정부가 이태원 참사 발생 다음날인 2022년 10월30일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첫 회의에서 “국가 책임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공식 용어를 ‘참사’에서 ‘사고’로 변경한 사실이 확인됐다. 회의를 주재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유흥·축제를 즐기러 갔다가 난 사고인데 참사라고 하는게 맞느냐”는 취지로 말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윤석열 정부가 참사 초기부터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28일 서울 중구 위원회 회의실에서 제63차 전원위원회를 연 뒤 이같은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조위는 지난 7~8일 행정안전부를 찾아 당시 중대본 회의록을 열람하고 회의에 참석한 행안부·보건복지부 간부 등 참고인 조사를 진행했다. 그간 국회 등에서 윤 정부가 책임 회피 목적으로 용어를 ‘참사’에서 ‘사고’로 변경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공식 문건 등을 통해 이같은 의혹이 사실로 처음 확인된 것이다.
특조위에 따르면 중대본 첫 회의가 열리기 전까진 정부도 ‘참사’와 ‘사고’ 표현을 혼용했다. 언론들 상당수는 사고 첫날부터 ‘참사’로 규정해 보도했다. 그러자 중대본 첫 회의에서 용어 변경 논의가 이뤄졌다는게 특조위 설명이다.
회의록을 보면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은 “가해자가 없는 이번 사고의 특성을 고려해 피해자·희생자 등을 사망자·사상자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김의승 전 서울시 행정1부시장은 “사고 원인이 조사 중인 점을 감안해 원인이 확실히 밝혀질 때까지 이태원 사고로 (용어) 변경을 건의한다”고 말했다.
용어 변경 사유로는 국가 책임 문제가 거론됐다. 회의 참석·참관자들 진술에 따르면 이 전 장관은 윤 전 대통령의 회의 참석 전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참사나 희생자 표현을 쓰면 나중에 국가 책임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용어를 변경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한 전 총리는 “좋은 의견”이라며 수용했다.
최종 승인은 윤 전 대통령이 했다는 게 특조위 시각이다. 회의 참석자의 진술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유흥이나 축제를 즐기러 이태원에 갔던 사람들이 몰려서 난 사고인데 참사 등 표현이 적절한가”라는 취지로 되물었다. 이에 따라 정부 공식 용어는 참사·피해자(희생자) 대신 사고·사망자 등으로 통일됐다. 특조위는 윤 전 대통령이 “아직 사고 원인이 밝혀진 것이 없고 법적 용어를 쓰는 게 맞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조규홍 당시 복지부 장관 진술도 확보했다.
이 전 장관의 ‘국가 책임’ 발언과 한 전 총리, 윤 전 대통령 발언은 중대본 회의록에 기재되진 않았다. 특조위는 “회의 참석자 등이 ‘긴급한 재난 수습 상황에서 용어 변경 문제가 중요 안건으로 다뤄진 것이 이례적이어서 당시 주요 발언을 기억하고 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용어 변경은 당시 회의에서 토론이 이뤄진 유일한 안건이었던 것으로도 특조위는 파악하고 있다.
참사가 아닌 사고로 부르기로 한 결정은 회의 당일 정부 각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에 전파됐다. 같은날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 주재로 열린 전국 지방자치단체 영상회의에서 용어 변경이 ‘행안부 장관 지시 사항’으로 특별히 강조됐다고 당시 참석자들은 전했다.
특조위 관계자는 “용어 변경은 참사 발생 이후 윤석열 정부가 각종 공문서와 언론 브리핑 등 공식 발표에서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호칭할지 결정한 것”이라며 “참사 초기 윤석열 정부가 참사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특조위 관계자는 “이번 조사를 통해 국가의 책임 회피가 드러났다”고 말했다.
특조위는 용어 변경과 관련한 윤 전 대통령과 한 전 총리 발언 등을 추가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대본 회의록이 행안부 공식 문서로 등록되지 않은 경위, 행안부가 지난해 10월 특조위의 관련 자료 제출에 응하지 않은 이유 등도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특조위는 앞서 특조위 청문회와 국회 국정조사 등에서 나온 이 전 장관의 용어 변경 관련 발언을 위증죄로 처벌할 수 있을지 등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