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0일 국회 의원회관의 작은 회의실. 삼성 네 계열사는 2013~2021년 8년간 사내급식 2조7800억원어치를 계열사 삼성웰스토리에 몰아줬고, 이 사건을 짚는 토론회가 이날 열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를 부당지원 행위로 규정해 234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지난 4월 이 처분을 통째로 뒤집었다. 재판부는 삼성전자가 웰스토리 이익을 지켜주려 한 ‘의도’가 문서로 확인돼야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미래전략실 회의자료, 경쟁입찰 중단 정황, 문서 삭제 지시 e메일까지 모두 간접 증거로 밀려났다. 행정제재 사건에 형사재판급 증명 책임을 요구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류로 남지 않는 부당지원은 사실상 입증할 방법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 자리는 한산했다.
같은 시기 사람들의 눈은 다른 곳에 있었다. 5월27일 삼성전자·SK하이닉스 하루 등락률의 2배를 추종하는 레버리지 ETF 16개가 국내 증시에 동시 상장됐다. 이날 거래액만 10조원, 개인 순매수만 2조원을 넘겼다. 6월 한 달 거래액은 212조원에 달했다. 노후자금을 넣은 은퇴자와 종잣돈을 태운 청년까지 뛰어들었다. 보호자 동의를 받은 미성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조어 ‘삼전닉스’도 이런 흐름에서 나왔다. AI 반도체 붐에 올라탄 두 회사가 돈과 관심, 정책까지 한꺼번에 끌어당기고 있다는 뜻이다. 웰스토리 판결과 ETF 광풍을 나란히 놓으면 그림이 선명해진다. 견제의 눈은 사라지고, 돈과 관심은 두 회사로만 몰린다. 거대기업의 영향력이 커졌을 때 사회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막대한 이익을 놓고 이해관계자들이 부딪는 장면도 잇따랐다. 4월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며 평택캠퍼스 앞에 4만명을 모았다. 그러자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가 맞불집회를 열어 노조를 “악덕 채권자”라 몰아세웠다. 5월, 참여연대는 초과이윤 분배 토론회를 준비했다. 그러자 살해 협박과 지역 비하가 뒤섞인 글이 온라인에 올라와 경찰이 출동했다. 같은 달 노사는 DS부문 특별성과급 도입에 잠정 합의했지만, 갈등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번달엔 주주운동본부가 두 회사 대표이사를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중재를 맡았던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직권남용 혐의로 함께 고발했다. 갈등은 확전되고 있다. 정부가 400조원 규모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자, 7월에 초기업노조는 내부 설문 84% 반대를 앞세워 2027년 임단협 의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왜 유독 최근에 이런 충돌이 격해졌을까. 근본적인 답은 나눠야 할 몫 자체가 커졌다는 데 있다. 초과이익분배제도는 삼성전자에서 2001년부터 있었다. 갑자기 등장한 낯선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 대화와 타협으로 풀 사안이 곧바로 소송과 고발로 넘어간다. 중재에는 직권남용 혐의까지 씌워진다. 국회에서 풀어야 할 정치적 갈등을 법에 의존해 풀려는 ‘정치의 사법화’와 닮은 풍경이다. 거대기업 내부 갈등이 한국 정치의 나쁜 병리를 반복하는 셈이다. 내부 이해관계자들의 서로에 대한 반감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합산 영업이익은 반도체 한파가 몰아친 2023년 -1조원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올해는 639조원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나머지 상장기업의 영업이익을 다 합쳐도 같은 기간 181조원에서 308조원으로 늘어나는 데 그친다. 삼전닉스 두 회사가 나머지 상장기업 전체의 2배를 버는 셈이다. 두 회사 자본지출은 올해 120조원, 내년 150조원까지 늘지만 다른 업종 투자는 여전히 부진하다. 이런 흐름이 굳어지면 특정 부문이 다른 부문의 인력과 자본을 흡수하게 된다. 성장 기반 자체를 잠식하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거대기업이 관심과 자원을 통째로 빨아들일 때 나타나는 부작용은 세 갈래다. 하나는 견제 장치의 무력화다. 웰스토리 판결은 공정위가 대기업 내부거래를 심사할 때 검찰급 입증까지 요구받는 선례를 남겼다. 둘째, 갈등 해결 방식의 폭력화다.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은 대화 대신 소송과 협박으로 되돌아왔다. 마지막은 집중이 낳는 변동성의 증폭이다.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이 두 종목에 몰리고 파생상품까지 얹히자 코스피 변동성은 ETF 상장 전보다 2배로 뛰었다. 거대기업이 잘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 성공이 견제와 균형까지 빨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견제를 무력화한 것은 법원, 갈등을 폭력화한 것은 주주단체, 변동성을 키운 것은 금융업계이다. 정부 혼자 이 블랙홀을 멈춰 세울 수도 없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