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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의 풍경

입력 2026.07.29 20:47

수정 2026.07.29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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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과 차를 함께 타는 것이 늘 부담스럽다. 운전 상황에 집중하느라 대화가 겉도는 것도 싫고 긴장과 졸음을 반복하다 찾아오는 정적도 불쾌하다. 노래를 함께 듣는다는 간단한 해결책도 있지만 그마저도 체력이 닳으면 자장가가 된다. 사이가 아무리 좋더라도 차를 타고 1시간 이상 달리면 누구든 권태로운 부부가 되는 것만 같다.

동승의 고통을 참으려다 생긴 나의 이상한 버릇 중 하나는 창밖에 보이는 이정표를 영어로 의역해 읽는 것이었다. “마운틴 맥파이” 까치산. “오프닝 미들 스쿨” 개봉중학교. “더 에러 타운” 오류동. “헤븐리킹 스테이션” 천왕역.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로 가는 경로 위엔 훌륭한 지명들이 넘쳐났다. 온수역을 거치며 감격에 겨워 “웜 워터 빌리지”를 외쳤더니 운전하던 친구가 이제 그만하라며 점잖게 내 입을 막았다.

무안해진 나는 한동안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다가 서울과 경기도 사이에 놓인 무한의 터널을 지나며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를 부르기 시작했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아! 차라리… 차라리!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 친구는 내가 한 곡을 다 부르는 동안 무신경한 남편처럼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남편을 야속해하는 부인이 되어 넋두리를 이어갔다. “조용필의 히트곡은 ‘돌아와요 부산항에’지. 그런데 그거 알아? 조용필의 고향은 부산이 아니야… 조용필은 경기도 화성, 화성이 낳은 슈퍼스타지. 멋있어. 우리의 가왕이 ‘화성에서 온 남자’라는 게…” 나의 열변에도 한참 대답이 없던 친구는 길이 밀리지도 않는데 도착시간이 계속 늘어난다며 긴 운전의 피로를 애꿎은 내비게이션에 넘겼다.

“너 화성시에 대해서 찾아본 적 있어? 화성시의 영어이름은 ‘마스(Mars)’가 아니야.”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에어컨 바람 때문에 오히려 녹초가 되어버린 나는 위키피디아에 화성을 검색해 성능 나쁜 인공지능(AI)처럼 읽기를 시작했다. “화성은 경기도 내 재정 자립도 1위인 도시입니다. 또한 전국 4위의 부자 지자체입니다. 미국 CNN에 따르면 ‘앞으로 부유해질 도시’에 충남 아산시와 함께 나란히 4, 5위를 기록한 도시이지요. 그러나 둘 중 누가 4위인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화성시 출신의 유명인으로는 축구선수 차범근, 코미디언 이용진, 래퍼 쿤디판다, 유튜버 ‘유채훈의 웃음극장’, 그리고 ‘응가 거부 준우’가 있습니다.”

“‘응가 거부 준우’가 대체 뭐야? 그것도 래퍼나 유튜버 이름이야?” 주차장을 찾느라 운전에 집중하던 친구도 그 이름만큼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는지 내 말꼬리를 잡아 물었다. “네. ‘응가 거부 준우’는 SBS에서 방영되었던 아동 솔루션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나온 출연자로 배변을 거부하는 아동 출연자였습니다. ‘응가’의 ‘응’ 자만 들어도 혼비백산! 변기 그림자만 봤다 하면 걸음아 나 살려라 줄행랑! 배변이라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온몸으로 거부한 아이였다고 합니다. 다행히 잘 해결되었고 현재 근황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간은 무더위로부터 신체와 정신을 보호해야 한다. 그러니 피서란 일종의 방역 행위다. 차 안에서 시시한 농담을 마구 늘어놓으며 나는 함께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고안된 모든 형태의 노력을 ‘피서’라 부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재난 같은 더위 속에서 그 방역 수단은 결코 모두에게 동등하지 않기에 나는 차가운 호텔 수영장 물속에서 온종일 몸을 이완하는 사람들의 피서가 궁금한 만큼 선풍기 한 대만으로 익어가는 여름을 버티는 이들, 열기가 가득 찬 창고와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온몸으로 버텨내는 이들의 피서도 궁금해진다.

부천에 도착한 뒤 친구에게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의 위원장이 배우 장미희씨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운전의 피로에서 해방된 친구는 장미희씨가 남긴 불멸의 수상소감 “아름다운 밤이에요!”를 간드러지게 외치면서 수많은 인파 사이를 춤추듯 걸으며 우아하게 극장으로 향했다.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에게 주어진 단 하루의 휴가가 정말로 아름다울 수 있기를 바랐다. 돌아가는 길엔 퍼부을 또 다른 농담들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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