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야구부의 5·18 조롱 응원으로 여론이 들끓었던 것이 딱 한 달 전이다. 이후 상황은 모두가 아는 대로다. 광주제일고의 항의서한 전달과 배재고의 전국대회 6개월 출전정지 징계, 배재고 구성원들의 광주 단체 방문 사과와 화해의 악수, 교육감까지 동행한 5·18 민주묘지 참배, 그 이튿날 광주제일고의 징계 재검토 요청까지. 이 많은 일이 신속하고 ‘깔끔하게’(어른들의 시각에서는) 정리됐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러나 위험은 잠복 중으로 보인다.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휴화산의 마그마처럼.
교육당국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는 지난주 학교시민교육과 관련한 온·오프라인 토론회를 세 차례 개최했다. 현장토론회에서는 지난해 12월 민주시민교육 특별위원회 구성 후 6개월간 논의된 ‘학교시민교육 국가 기본원칙’이 발표됐다. 주요 내용은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안은 명확하게 교육하되, 사회적으로 견해가 갈리는 사안은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한 채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토론하도록 한 것이다.
배재고 사태 한 달…표면상 일단락
위험은 잠복 중, 언제건 터질 수 있어
우리 공동체의 중요 과제 ‘혐오 극복’
체험·소통·공감이 시민교육의 핵심
서울특별시교육청도 최근 정규 교육과정과 연계한 토론·숙의 교육 체계를 마련한다는 방침 아래 교육감이 승인하는 민주시민교육 과목 인정교과서 개발에 나섰다.
현장에서는 이런 움직임에 대부분 싸늘하고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안타까운 건 이걸 교육의 문제로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교육을 안 해서가 아니잖아요. 5·18에 관해 배우고 시험문제 나오면 다 맞추는데 혐오는 계속되고 있잖아요.”
청소년 독립언론 ‘토끼풀’의 문성호 편집장은 필자와 통화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지난달 ‘토끼풀’ 창간 2주년을 맞아 주요 기사를 묶어 펴낸 책 <공부나 하라고요? 세상이 이 모양인데> 제목은 청소년들의 현실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며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사회를 향한 항변이다. 이들은 청소년이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해 더 이상 청소년 언론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국교위 민주시민교육 특위가 출범할 때 이미 일부 교육단체에서는 청소년이 배제돼 민주시민교육 정책 구상이 겉돌 것이라는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혜정 교수(경인교대 교육학과)는 9년 전 ‘교실이 혐오의 배양지’라는 언론사 기획 기사까지 나왔음에도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우리 사회가 혐오·차별 현상에 대응하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결과가 배재고 사태로 나타났다면서, 한강 작가의 말처럼 ‘배재고 사태’는 우리에게 어떤 신호를 주고 있고, 이를 방관하면 10년 후 우리는 더 비극적인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교육을 추가하는 방식은 효과가 크지 않다는 걸 교사들은 이미 안다고 했다. 혐오와 배제의 문제가 삶에 와닿게 체험될 수 있어야 한다며 교육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학교가 차별과 혐오를 용인하지 않는 공간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이들을 기계처럼 생각해 뭔가를 투입하고 실험하려 하기보다 관계성을 생각하고 상호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민주주의 교육의 핵심이 돼야 한다.
학교 역사동아리 ‘피스메이커스’의 아이들과 함께 ‘누군가의 아픔은 놀이가 될 수 없다’는 민주인권 캠페인을 준비한 경기도 영성중학교 이종관 교사도 “가르치려는 교육은 효과가 없다”고 했다. 어른의 훈계 대신 또래의 언어로, 금지 대신 체험으로 가자고 생각했고, 캠페인 부스는 그렇게 아이들 손에서 만들어졌다. “솔직히 ‘존중하자’ 이러면 애들 다 도망가요. 그래서 게임처럼 만들었어요.”(기획 참여 학생) 이 교사는 마음 놓고 이런 교육활동을 하고, 이런 일로 공격당하며 조롱당하지 않도록 교육당국이 보호방안을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성인 중심 관점이 아닌 학생들 중심으로 바라봐야 한다.”(정근식 교육감, 7월22일 비전선포 기자회견) “학교시민교육 강화가 구호에 머물지 않으려면 교육 현장의 장애를 걷어내고 실행 원칙을 세워야 한다.”(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 7월23일 학교시민교육 토론회) 제발 현장에서 원하는 이대로 해달라. 다만 너무 많은 시간이 가기 전에. 지금도 약한 틈새마다 혐오가 자라고 있다.
송현숙 커뮤니케이션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