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신록(新綠)의 계절이라면, 여름은 녹음(綠陰)이 짙어지는 시기다. 살랑이는 봄비가 지나가면 겨우내 바싹 마른 잎은 연둣빛으로 물들고, 한여름의 쨍한 햇빛 속에서 초록잎은 무성하게 피어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산과 들은 푸른빛으로 저절로 일렁인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저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식물은 씨앗에서 아름드리나무까지 자라난다. 먹고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동물 입장에서는 더없이 부러운 일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인데, 어찌하여 식물은 저절로 자라는 듯 보이는 걸까.
기원전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동물이 입으로 먹이를 먹고 자라듯, 식물은 뿌리로 흙을 먹고 자란다’고 말하며 처음으로 이 질문에 답하고자 했다. 풀과 나무는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며, 흙에서 뽑아내면 말라 죽기에 이는 직관적으로 그럴듯했다. 너무도 당연해 보였기 때문일까, 식물은 뿌리로 흙을 먹고 자란다는 ‘상식’을 진짜로 확인하는 사람이 등장한 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얀 판 헬몬트(1577~1644)는 화분에 건조된 흙을 약 90㎏ 넣고, 여기에 어린 버드나무를 심고 오직 물만 주면서 이를 키웠다. 5년 후 다시 측정해보니 버드나무는 2.3㎏에서 77㎏으로 약 33배나 자랐지만, 흙은 겨우 50g 남짓 줄어들었을 뿐이었다. 그간 이 화분에 추가된 것은 오직 물뿐이었으니, 헬몬트는 이 실험을 통해 식물을 성장하게 하는 것은 흙(땅)이 아니라, 물이라 결론을 내렸다.
그럼 식물을 자라게 하려면 물만 주면 되는 것일까. 하지만 (대부분의) 식물은 물 없이는 살 수 없어도 물만으로는 살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뿌리를 내릴 흙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존 우드워드(1665~1728)는 민트 화분에 각각 증류수와 강물, 진흙이 섞인 흙탕물 등 다양한 물을 주며 물의 종류에 주목했다. 결과를 보니, 깨끗한 물보다는 흙탕물이 오히려 식물의 원활한 성장에 더 도움을 주었다. 우드워드는 흙탕물 속 무언가, 흙이 품고 있는 무언가가 식물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18세기가 되자 화학이 발전했고 어떤 대상을 구성하는 물질을 분석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식물학자이자 화학자인 소쉬르(1767~1845)는 식물이 태양빛을 쬐면 주변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는 사실을 관찰하고, 식물을 태워서 얻은 재를 분석해 여기서 칼슘, 칼륨, 마그네슘, 인, 황, 질소 등 수십가지에 이르는 원소들을 찾아냈다. 이산화탄소(CO2)와 물에서 얻을 수 있는 성분은 탄소(C)와 산소(O), 수소(H)뿐이니, 식물을 구성하는 다른 원소들을 식물이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루트는 흙뿐이었다. 식물의 성장을 위해서는 물과 이산화탄소와 흙이 모두 필요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곧 깨달았다. 정확히는 흙이 아니라, 그 흙이 함유하고 있는 각종 유기물과 무기염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면 물에 이 물질들을 섞어준다면 흙 없이도 식물을 키울 수 있는 게 아닐까. 식물학자 빌헬름 크놉(1817~1891)은 식물 성장에 꼭 필요한 물질을 담은 영양액인 크놉액을 개발했고, 이 액체만으로도 식물을 얼마든지 키울 수 있음을 보여주어, 수경재배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후 20세기 들어 여러 학자의 연구 결과 식물은 물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광합성을 하여 유기물을 만들며, 뿌리로 토양 속에 함유된 무기물을 흡수해 생존하고 성장한다는 사실이 모두 알려졌다. 식물이 뿌리로 흙을 먹고 산다는 직관에서 식물의 성장에 물과 이산화탄소와 여러 염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 200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올해 들어 미국 항공우주국에서는 미래 우주식량을 개발하는 ‘Deep Space Food Challenge’의 연장으로 ‘Mars to Table’ 공모전을 실시하고 있다. 오랫동안 식물을 먹거리로 삼아온 인류인 만큼, 살아가는 행성이 달라져도 먹거리의 기본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수천년 동안 식물의 성장에 대해 알아온 결과물이, 지구를 벗어난 전혀 다른 땅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어 화성인의 식탁에 오를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더불어 부디 인류의 오랜 노하우가 우주인의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길 기원하는 바이다.
이은희 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