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의 글씨. 1910년, 종이에 먹, 니시가와 기증(1966).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서투른 목수는 아름드리 큰 재목을 쓰기 어렵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을 앞둔 1910년 3월 중국 뤼순 감옥에서 ‘용공난용연포기재(庸工難用連抱奇材)’ 여덟 글자를 남겼다. 왼편에는 ‘대한국인 안중근 서(書)’라는 글과 약지가 없는 왼손바닥 도장이 찍혀 있다. 힘차게 뻗은 획과 선명한 손자국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 시대를 향한 경계이자, 조국을 향한 그의 결의를 전한다.
이 유묵은 30일 다시 문을 여는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대한제국실에서 만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대한제국실을 새롭게 단장해 보물 7점을 포함한 문화유산 65점을 선보인다. 지난해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 공간에 포함돼 문을 닫은 지 9개월 만이다.
기존 전시가 고종의 황제국 선포와 근대화 정책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새 전시는 황제 즉위와 근대화 추진이 제국주의 열강의 압력 속에서 자주권을 지키려는 시도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조선이 근대 주권국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대한인(大韓人)’이라는 정체성이 일제의 침략에 맞서는 과정에서 더욱 뚜렷해졌다는 데도 주목했다. 국내외 외교 활동을 조명하는 코너를 신설하고 민영환과 안중근 등 초기 독립운동가의 저항, 국권 피탈 이후 들어선 조선총독부의 흔적까지 전시의 범위를 넓혔다.
국권 침탈과 저항을 다룬 마지막 3부에는 을사늑약에 항거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민영환의 유물과 ‘안중근 의사 유묵’(보물), ‘데니 태극기’(보물) 등이 전시된다. ‘안중근 의사 유묵’은 <자치통감>의 구절을 바꾸어 쓴 것으로,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인재를 기용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데니 태극기’. 1890년경, 면직물, 윌리엄 랠스턴 기증(1981).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각국 공사관이 표시된 1902년 한성 지도. 1902년, 종이에 인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데니 태극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큰 태극기이다. 가로 262㎝, 세로 182.5㎝ 크기이며, 흰색 광목 두 폭을 이어 바탕을 만들고 붉고 푸른 천을 오려 붙여 태극을 표현했다. 태극기의 주인이었던 오웬 니커슨 데니는 고종의 외교고문으로, 청나라의 간섭을 비판하며 조선이 주권독립국임을 주장했다. 고종이 귀국하는 데니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데니의 후손이 1981년 한국에 기증했다. 1996년 옛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할 당시 발견된 동제 상량문과 정초 은판도 처음으로 공개된다.
앞선 1부는 근대 주권국가를 향한 대한제국의 지향을 조명한다. 자주권 확립을 위한 황제국 선포의 의미를 ‘칙명지보’ 등 어새 3점과 황제 즉위식을 기록한 보물 ‘대례의궤’, 7년 만에 공개되는 ‘고종황제어진’을 통해 보여준다. 2부는 행정제도 개편과 신식 교육, 신문·잡지의 확산 등 대한제국의 근대화 노력을 살핀다.
최신 기술을 활용한 영상은 관람객을 100여년 전 대한제국으로 이끈다. 전시장 입구에선 근대 문물의 상징인 전등과 대한제국 황실의 이화문이 겹쳐지는 영상이 투명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상영되며, 대한제국기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을 재가공해 생생한 영상으로 구현했다. 근대 도시로 빠르게 변모한 한성의 풍경과 대한제국의 외교 행보를 조명하는 영상도 마련했다.
대한제국실 개편과 연계해 조선3실의 19세기 전시도 대한제국으로 이어지는 시대 변화의 흐름이 드러나도록 새롭게 구성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결과적으로 국권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동안 대한제국을 평가하는 데에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대한제국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시대적 전환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 역사에서 근대의 출발을 제대로 살피기 위해 중요한 과정”이라고 밝혔다.
3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 새롭게 개편한 대한제국실에 고종이 미국인 데니에게 하사한 태극기가 전시돼 있다. 국내에 남아있는 옛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되었고, 크기도 가장 크다. 연합뉴스
3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 새롭게 개편한 대한제국실에서 관계자들이 전시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