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며칠 전 경북의 한 두메산골 대나무밭 아래 한옥 마루에 누웠다. 이젠 길냥이 발길마저 끊어져가는 곳. 문득 대학 시절 방학 때 내려와선 아버지께 핏대 높여 대들던 추억들이 땀방울처럼 솟아난다. ‘9시 뉴스’를 볼 때면 종종 정치 얘기로 빠져들었다. 답도 없는 의견대립이 이어지곤 했다. 그 시절 어른들의 보수성은 요사이 수구당 ‘짝퉁 먹물들’의 것과는 결이 다르다. 갓 뽑아온 무처럼, 뿌리 깊이 삶이 묻어난 경험칙이었다. 논쟁이 익어가다가 끝내 부친은 “마, 느그가 보릿고개를 아나”라곤 하셨다. 이는 곧 대화의 종착점을 가리켰다.
불과 수십년 전 초봄이면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배고픔을 달랬다던 얘기가 뒤따랐다. 딱 보리 이삭이 패기 전,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절체절명의 시기다. 그 설움을 달래준 나라님에 대한 기억은 뼛속 깊이 새겨지기 마련이다. 거기에다 대고 세상 물정 모르는 자식이 “민주주의” “인권” 어쩌고저쩌고 떠들어댔으니… 쌀밥이냐, 보리밥이냐를 가르는 백척간두 위의 이들에게 진보·보수 따지기란 배부른 소리다. 요즘처럼 책 팔아먹고, 유튜브 광고나 챙기려는 ‘이데올로기 장사치들’의 세 치 혀는 너무나 가벼울 따름이다.
실용 앞세운 이재명식 AI 드라이브
‘인재 남방한계선’ 호남 확장엔 박수
무턱대고 퍼주고, 치워줘서는 위험
원전·댐 건설 앞서 대토론회 필요
‘실용’을 앞세운 이재명 대통령의 광폭행보를 보자면, 묘하게도 어릴 적 동네 어귀 벽에 붙어 있던 빛바랜 사진 속 한 얼굴이 오버랩된다. ‘박통’이다. 한강부터 저기 창원 바닷가까지 온 국토를 갈아엎으며 보릿고개 딛고 넘던 박정희의 추진력은 어쨌든 강렬했다. 지금 ‘잼각하’는 당시 ‘산업 근대화’ 기치를 ‘인공지능(AI) 투자’로 대체한 모양새다.
이 대통령의 AI 드라이브는 가공할 만하다. 반도체 공장, 데이터센터 건립을 위해서라면 뭐든 뚫어주고, 치워주고, 퍼주고 할 성싶다. 애초 대선 때 “민주당은 보수 하면 안 되냐”고 한 때부터 이미 예고된 각본이었다.
최근 우연히 유튜브 흑백영상으로 영일만 갈대밭 갈아엎은 포항제철 건립 부지를 방문한 박통과 청암 박태준의 모습에 뭉클했다. 어디 그뿐이랴. 정주영, 이건희 같은 선생들의 언행은 그냥 대하드라마다.
2010년 러시아 모스크바 출장길에 본 크렘린 옆에 빛나던 파란 ‘SAMSUNG’ 엠블럼은 가슴 한편에서 찡한 뭔가를 밀어올렸다. 당시는 내가 물불 안 가리고 삼성에 비판기사를 쏟아내던 때다. 그러나 노무현도 그랬다듯, 바다 건너서 목도한 ‘민족자본’의 실상은 묘하게 벅찬 것들이었다. 붉은광장 건너편의 빨간 ‘LG’ 간판 또한 그랬다. 명차의 본고장 유럽 문을 두드리며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전시된 현대차도 마찬가지였다.
‘인재의 남방한계선’이라는 용인 일대를 넘어 호남까지 반도체 라인을 훌쩍 끌어내린 이 대통령의 용단에는 박수를 보낸다. 집적효과만 보자면 응당 용인이나 평택 일대에 라인 증설이 답이다. 그러나 핵심인 용수·전력을 끌어오는 데 한계에 부닥친 현실에서 선택지는 해외냐, 영남·호남이냐 정도만 남는다. 전남광주행은 산업벨트가 ‘경부선’에서 ‘호남선’으로도 분기되는 신호일 만큼 역사에 남을 선택이다.
다만 여전히 전력과 용수 확보가 숙제다. 전력은 결국 원전 확충이나, 검증도 안 된 SMR 설립 공산이 농후하다. 더 문제는 용수다. 이는 결국 인근에 댐을 새로 세우거나, 기존 댐을 확충하는 방편이 예상된다. 모두 국가적 숙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사실 트럼피즘이 판치는 시대에 우리만 고고한 학처럼 지낼 수는 없다. 그럼에도 환경영향평가를 느슨하게 해주며 번갯불에 콩 튀기듯 댐, 원전 등을 뚝딱 짓겠다는데 그냥 눈감아줘선 안 된다. 비판이나 자성의 목소리가 여권에서 제대로 안 나온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그저 낡은 족보나 파헤치는 한물간 드라마만 재방영 중이다.
밀어붙이기 전 지역균형발전과 원전·댐 건설을 놓고도 마땅히 국민 대토론의 장을 가져야 하겠다. 열린 자세로 듣고, 논쟁하고, 해법에 머리를 맞대야 비로소 함께 갈 길이 보일 것이다. 60여년 전과는 다른 리더십이 필요하다. 분당 자택에 근저당권 설정을 통한 매매처럼 ‘묘한 실용’은 참외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매는 행위로 비칠 수 있다.
전병역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