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개정한 방송 관련법에 따라 공영방송사 거버넌스 변화가 가속하고 있다. 13명 정원인 방송문화진흥회 및 EBS 이사회는 국민의힘 몫 이사 2인씩을 제외하고 각각 11명이 임명된 상태다. 방문진은 곧 새 MBC 사장 선임 절차를 시작한다. 15명 정원인 KBS 이사회는 임직원과 시청자위원회 추천 몫 5명의 선임 절차가 지연되고, 국민의힘도 추천을 미뤄 현 재적은 8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KBS 이사회는 지난주 임시 이사장을 호선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도 신규 이사들이 정원의 과반수가 임명된 후 이사회를 운영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번엔 공영방송을 제대로 정상화해야 한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KBS와 MBC의 일부 이사 교체 및 사장 해임 등을 통해 거버넌스를 바꿨다. 당시 정상화의 화두는 이명박, 박근혜 시절 행해진 방송 탄압과 퇴행적 공영방송 운영을 바로잡는 일이었다. 그러나 2022년에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후 권력의 방송 장악 시도가 재연됐다. 지난해 탄핵 및 정권교체 후 다시 시작된 이번 정상화는 경영진 교체로 끝낸 과거와 달리 방송법 개정을 통한 정치적 후견주의를 타파하는 제도화가 핵심이다. 이제 운영 과정에서 법 정신을 살리고 그 실천을 관행으로 만드는 과제가 남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관련 법을 다시 일부 개정해야 한다.
독립성 보장 외에 또 다른 과제가 있다. 그것은 지속 가능한 공영방송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2017년 이후의 정상화 드라이브 때도 지상파 방송 중심의 공영방송은 이미 쇠락의 길을 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독립성 회복에만 집중한 채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한 대처가 소홀했다. 시청률은 계속 떨어지고, 제작비는 올라 적자가 만성화하기 시작했다. 새 경영진마다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며 제작비를 늘리다가, 적자가 불어나기 시작하면 급하게 비상경영계획이란 이름으로 제작비를 줄이는 패턴을 반복했다.
이제는 긴축으로도 적자를 면치 못하는 비정상 상황이 고착했다. KBS는 제작비를 줄였지만 적자 폭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제작 자회사인 몬스터유니온 또한 2025년에 대규모 적자를 냈다. MBC는 시청 점유율 상승과 높은 시민 신뢰도라는 우수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2025년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역 계열 방송사 중 일부는 자본잠식이 임박한 상태다. 상대적으로 사업 규모가 작은 EBS만이 2025년에 비용 절감 등으로 적자를 피했다. 그러나 여전히 공적 재원은 37%에 불과하다. 전체 수입의 25%에 해당하는 교재 판매에 더해 각종 부대사업으로 나머지 비용을 충당하는 불안정한 재원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영향력 있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정도로 제작비를 줄여가는 공영방송은 왜 존재해야 할까!
제도가 잘 변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신제도주의 이론은, 기존 질서 안에서 이해관계가 평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만 급격한 정치·경제 질서 변화가 일어나는 ‘중대 국면’에서만 제도개혁의 기회가 찾아온다. 한국의 공영방송 시스템은 2017년 박근혜 탄핵 이후 펼쳐진 중대 국면을 놓쳤다. 이번 기회에는 정부, 국회, 방송사가 함께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새로운 구조를 설계하고 실천해야 한다. 방치하면 끝은 뻔하다.
강형철 경향신문 독자위원장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