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가끔은 병원에서 만 보쯤 걸으며 하루를 보낸다. 몸의 각 부위는 이 커다란 건물의 개별 진료과와 검사실에 조각조각 나뉘어 있고, 병원의 층별 안내는 곧 몸의 지도다. 1층에 채혈실이 있고 2층에는 산부인과. 아, 잠깐. 3층에 검사실이 있었지. 내 폐가 거기에 있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이렇다. 오전 8시에 채혈하고 기다렸다가 오전 10시 진료, 오전 11시 진료, 점심 먹고 오후 1시까지 진료 보고 약을 타서 귀가. 실제로는 하루 안에 협진을 다 몰아넣기만 해도 다행이다.
종일 병원에 머물다 보면 병원의 인구밀도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느낄 수 있다. 점심 무렵은 북새통을 이룬다. 외지고 조용해서 내심 찜해놓은 의자들도 꽉 찬다. 때를 기다렸다가 냉큼 앉아야 하는 의자놀이에 나는 자주 패배한다. 남은 자리는 일렬로 배치된 좌석의 중앙. 앉은 사람들의 무릎에 오금을 쓸며 들어가 앉는다. 간호사가 이름을 부르면 다시 오금을 쓸며 나간다.
그래도 나는 허리를 세워 앉을 수 있으니 사정이 낫다. 힘든 환자들은 보호자의 무릎을 베고 좌석 두어 개를 차지하고 눕는다. 때로는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이 구석진 의자에 빈 가마니처럼 쓰러져 있다.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입원 절차를 밟는 보호자들은 초조하게 대기 줄을 서성이느라 제대로 앉지도 못한다.
기신기신 밖으로 걸어 나오면 넓은 차로 건너편에 고층 아파트들이 있다. 유독 지치는 날에는 아파트의 창문을 올려다보면서 생각했다. 아, 저기에 들어가서 누울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런 역할을 하는 공간이 없지는 않다. 암 요양병원은 통원을 돕고 일상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대표적인 곳이지만, 이른바 ‘면역 증강 주사’ 등 고액의 비급여 치료를 입원 조건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어떤 대형병원 근처에는 ‘환자방’이라는 공간들도 있다. 하루 몇 만원에 원룸을 제공하는, 암 요양병원의 하위 호환 상품이다. 위생적인 공간에서 충분히 쉬고 회복해야 하는 몸이 지역 보건의료와 돌봄 제도의 부재, 경제적 여력을 이유로 변변한 취사시설도 없는 몇 평 공간에 들어가 눕는다.
병실이나 진료실 앞에서 낯이 익은 환자와 보호자 몇몇은 병원에서 전철 몇 정거장 떨어진 방을 구해서 통원하거나 간병했다. 다 서울까지 와 치료받는 지역 사람들이었다. 202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추계한 지역 환자의 서울 원정 교통비와 숙박비는 연간 4121억원. 환자와 보호자가 치료를 위해 이용하는 공간의 유형과 그 수가 집계된 공식 통계는 없다. 기사들의 취재 내용과 추계된 비용의 규모로만 그 실태를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상황이 이러니 치료받는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가 차라리 속 편하다는 말도 들었다. 동의한다. 단, 그 병실이 보호자 없이 운영되는 간호간병통합병동일 때다. 간호간병통합병동에 대한 환자의 만족도는 높지만, 이 서비스에 참여하는 병상은 상급종합병원 기준 23.4%에 불과하다. 지역 환자가 몰려드는 병원일수록 보호자 없이 입원할 수 있는 병상이 적다는 의미다.
의료법은 환자 1인당 필요한 입원실 면적을 정해놓았다. 그러나 그 면적 기준에 보호자는 포함돼 있지 않다. 일반병동 환자의 침상 커튼 너머에는 옆 침상 보호자의 간이침대가 바짝 붙는다. 매일 밤 얼굴도 모르는 옆 침상 보호자의 숨소리를 얼굴 맞댄 듯이 듣고, 커튼 사이로 무심코 드러난 그의 맨다리를 본다. 5인실에 5인의 환자와 5인의 보호자. 도합 10인분의 체취와 소음과 오염이 병실 바닥의 머리카락처럼 엉키고 화장실의 물기에 녹아 있다.
환자의 몸은 늘 병원 안팎 어딘가에 있지만, 제도는 의료적 처치를 수행하는 순간까지만을 담당한다. 나머지는 환자와 보호자가 알아서 채운다. 몸을 앉히고 뉠 공간을 찾아서,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닌 의자놀이의 연속. 이번 병원 투어도 정신없이 만 보쯤을 걸었다.
김도미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저자
<김도미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