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종일 사무실에 머무르다 보니 잠시 무더위의 감각을 잊었던 모양이다. 업무차 방문한 남쪽 지방 도시에서 길을 걷다가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숨 막히는 열기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내리쬐는 오후 땡볕이 피부를 찰싹 때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40도를 기록하는 지역들은 대체 어떻다는 말인가. 작은 가로수 그늘 아래로 ‘대피’하면서, 일행 중 한 명이 말했다. “인간적으로, 이런 날은 일 시키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맞는 말이다. 우리는 그 잠깐의 시간에도 힘들다고 투덜댔지만 폭염의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냉방 설비를 갖추기 어려운 건설 현장, 뜨거운 철제 구조물과 용접 작업이 많은 조선소, 냉방과 환기가 불충분하고 신체 부담이 큰 물류센터, 상하수도나 도로 같은 시설 유지·보수 작업을 하는 야외 작업 현장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배달이나 가정방문을 위해 길 위에 있어야 하는 이동 노동자, 논밭이나 축사·비닐하우스·야산 등에서 일하는 농작업자들이 대표적 고위험군이다. 공익연구센터 블루닷이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5~2025년 온열질환 발생 중 약 47%가 일터와 관련이 있었고, 그중 실외 작업장에서의 발생이 약 68%, 실내 작업 15%, 논밭 등이 17%를 차지했다.
40도 넘는 숨막히는 폭염의 날
연이은 이주노동자들 사망 소식
보편화된 ‘위험의 이주화’ 산재
‘제도적 보호’ 누구나 적용해야
폭염의 심각한 건강 영향이 알려지면서 노동안전보건 규제도 점차 강화되고 있다. 2025년 7월 산업안전보건규칙이 개정되면서, 체감온도 33도 이상일 때 2시간마다 20분 이상의 휴식 ‘권고’가 ‘법적 의무’로 변경되었다. 또한 올해부터 체감온도 38도 이상의 극단적 고온에 대비해 ‘폭염중대경보’가 신설되면서, 고용노동부의 단계별 작업중지 권고도 세분화되었다. 체감온도 33도 이상일 때는 작업시간대를 조정하거나 옥외작업을 단축하고, 35도 이상일 때는 무더위 시간대(14~17시) 옥외작업을 중지하며, 38도 이상일 때는 긴급조치 작업 외 옥외작업 중지를 권고했다. 노동부는 본격적 폭염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5월에 이러한 ‘폭염 대비 노동자 건강보호 대책’을 발표하고 폭염안전 특별대책반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전해지는 소식들은 이러한 조치가 여전히 충분치 않음을 보여준다. 최근 한 달간 이주노동자 네 명이 폭염으로 사망했다. 야산에서 풀베기 작업을 하던 베트남 국적의 20대 노동자, 돼지농장 축사에서 일하던 네팔 국적의 30대 노동자, 오후 3시에 밭에서 일하던 태국 국적의 30대 노동자, 야외 패널 작업을 하던 중국 국적의 60대 노동자가 그들이다. 작년에도 비슷한 사건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베트남 국적의 20대 노동자, 제초작업을 하던 네팔 국적의 40대 노동자가 폭염으로 사망했다는 기사 제목만 놓고 보면, 이것이 2025년의 일인지 2026년의 일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폭염이 이주노동자만을 표적 삼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허약한 사람들만 국내에 취업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위험의 외주화’만큼이나 ‘위험의 이주화’도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취업자 중에서 이주민이 차지하는 비중은 3~4%밖에 안 되지만, 산업재해 사망자 비중은 10~15%에 달하며, 올해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13명 중 이미 네 명이 이주민이다. 물론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에 이주노동자는 차별해도 된다고 적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도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직종과 작업 현장이 존재하며, 바로 이곳, 내국인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이곳에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예컨대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과 휴게에 대한 규정을 농림업과 축산업 노동자에게 적용하지 않는다. 산업안전보건법도 상시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안전보건 교육 의무를 적용하지 않으며, 법인이 아닌 상시 근로자 5인 미만의 농림어업은 산재보험법의 적용이 제외된다. 게다가 이방인이라는 신분의 불리함과 차별적 관행, 고용허가제라는 족쇄는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예컨대 작년 폭염으로 베트남 국적 노동자가 사망했던 건설 현장은 정부 지침에 맞게 혹서기 단축 근무를 시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국인 노동자들은 오후 1시에 퇴근하고, 이주노동자들로만 구성된 팀은 오후 4시까지 근무했다.
여름철 폭염은 이제 일상 재해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불평등한 고용 구조와 안전보건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매년 여름마다 비슷한 비극은 반복될 것이다. ‘일 시키면 안 되는 이런 날’은 ‘인간적으로’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한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