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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왜 끓일까?

입력 2026.08.02 20:12

수정 2026.08.0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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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기한 컵라면 하나를 전달받았습니다. 일본의 한 식품회사에서 개발한 ‘히야시 컵누들’, 우리말로는 ‘차가운 컵라면’입니다. 보통의 컵라면은 뜨거운 물을 부어 조리하지만 이 제품은 특이하게도 냉장고에서 꺼낸 찬물을 부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실 일본에는 여름철 별미로 냉라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면을 익힌 후 찬물로 헹구고, 차갑게 식힌 라멘 육수와 함께 즐기는 음식입니다. 때로는 인스턴트 라면도 이와 비슷하게 조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들고 있는 이 컵라면은 차가운 물만 붓고 기다리면 됩니다. 어떻게 면을 익히지도 않고 조리가 되는지 신기해하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사실 라면은 이미 익혀진 상태라는 것을 말입니다.

라면은 간편한 조리를 위해 발명되었습니다. 그래서 면을 만든 후 뜨거운 증기로 익히는 증숙과 기름에 튀겨 수분을 제거하는 유탕이라는 과정이 추가되는데, 이렇게 가공된 면은 물에 넣어 끓이면 아주 빠르게 익게 됩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원래 익혀졌던 상태로 되돌아갑니다.

면의 재료인 밀가루는 약 80%가 전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분은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합성한 탄수화물 고분자가 입자 형태로 응축돼 있는 물질입니다. 그렇다면 면을 익힌다는 것은 바로 이 전분을 익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분에 물을 첨가하고 가열하면 전분 입자들이 수분을 흡수해 팽창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입자들이 파괴되면서 탄수화물 고분자들이 밖으로 용출되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마치 풀처럼 끈적거리는 상태가 됩니다. 이러한 변화를 ‘호화(糊化)’라 하는데, 호화된 전분은 단단했던 입자가 물을 흡수하여 훨씬 더 부드러운 상태로 되기 때문에 식감이 좋아지고 소화 흡수가 잘됩니다. 라면, 우동, 소바 등 면을 익히면 나타나는 현상은 바로 이 전분의 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라면은 증숙을 거치면서 이미 호화를 겪은 바 있습니다. 라면을 끓이거나 아니면 뜨거운 물을 붓는 것은 면을 원래의 호화된 상태로 복구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과정을 ‘재수화(再水和)’라 부르기도 하는데, 물을 흡수한 상태로 되돌린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라면을 조리한다는 것의 본질이 재수화라고 한다면, 왜 굳이 면을 끓이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속도 때문입니다. 라면은 인스턴트식품의 특성상 빠른 조리가 중요한데, 면의 재수화 속도는 물의 온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온도가 높을수록 물 분자의 운동이 빨라지면서 면 내부로의 침투 또한 빨라지는 것이죠.

한편 이 속도를 더 높이기 위해 면의 내부 구조에 변화를 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좀 더 낮은 온도에서 조리되는 컵라면은 면에 감자 전분을 추가합니다. 감자 전분은 다른 전분에 비해 수분을 잘 흡수하는 특성이 있어 재수화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듭니다.

차가운 컵라면의 경우는 이런 특성을 더 강화한 가공 전분들과 알긴산 에스테르와 같은 수분 흡수력을 높이는 기타 첨가물을 혼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면의 외형도 납작하게 만들어 중심부까지의 거리를 최소화했습니다. 이를 통해 면을 삶은 후에 찬물로 헹구는 번거로움 없이도 차가운 라면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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