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의 한 원룸에서 월세 62만원을 내며 사는 지인이 상담을 요청해왔다. 임대인이 계약을 갱신하는 조건으로 월세를 5% 인상하겠다고 했는데, 이사를 알아봐야 할지 고민이라는 이야기였다. 62만원도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월세시장에서는 웬만해서는 더 나은 조건을 찾기 어렵기에 계약 갱신이 낫겠다고 조언했다. 한편에서는 토지비·건축비·물가 상승으로 현재의 임대료 수준으로는 공급원가를 감당할 수 없다며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장기임대사업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세입자들은 월세 부담에 하루하루 막막한데, 공급자는 임대사업이 어렵다고 말하는 기형적인 시장이 지금의 한국이다.
이마저도 서울 주요 지역의 이야기다. 비수도권 빌라가 밀집한 저층주거지에선 사실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노후주택을 새단장 하려 해도 비아파트를 사려는 사람은 없고, 재건축 원가를 월세로 회수하려면 서울 못지않게 비싸진다. 편리한 동네 및 쾌적한 주거환경을 위해 임대료를 더 부담할 의사가 있는 세입자조차 마땅한 주택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지난해 비수도권 저층주거지의 신축 인허가는 전국을 모두 합쳐 3000건 아래로 떨어졌다.
대한민국의 비아파트 주택시장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수요와 공급이 만난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손’에 가깝다. 물론 사회가 제시하는 경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수요자는 최대한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하고, 소유주(공급자)는 저층주거지를 모두 아파트 단지로 바꾸라는 방향이다. 이 과정에서 대출이자는 수십년의 족쇄가 되고, 세입자의 전세금은 언제 깡통전세가 될지 모르는 투자금으로 활용된다. 아파트 단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정비될 수 있었던 동네는 재개발만 기다리다 방치되고, 신규 공급이 끊긴 비아파트 전월세 시장에서는 임대료만 계속 오른다.
그렇다고 시장 행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대출 등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수요자나 대규모 재개발을 원하는 공급자 모두 주거 불안과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현실적인 대응이다. 문제는 아파트 분양으로의 이전 말고는 사실상 기능을 잃었음에도 다음 모델을 고민하지 않은 제도와 정치에 있다.
공정한 조세제도, 다주택자의 투기 방지 등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부동산 개혁은 오랫동안 누적된 과제인 만큼 큰 틀에서 성과를 거두기를 바란다. 다만 붕괴된 비아파트 시장에 대한 전향적인 개혁 역시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부동산 시장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비아파트 시장이 안정적으로 작동한다면 저층주거지의 주거환경 개선은 물론, 아파트 시장에 진입하려는 청년들에게도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며 결국 전체 주거 불안의 해소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지금까지 이러한 해법 자체가 정책의 중심에서 거의 검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세금이 아닌 방식으로 공급 자금을 충당할 수 있는 장기 금융상품 마련, 소규모 정비사업 및 주택 공급 시 공공·민간 자본 결합 모델 도입, 저층주거지에 살더라도 아파트 단지 수준으로 생활 편의시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주거·공공 공간의 복합화, 이 시장의 핵심 주체인 전월세 세입자 보호 등 아파트 공급 이외의 경로를 만들고자 고민한 대안들은 이미 적지 않게 축적되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시장 정상화를 위한 모델을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시킬 수 있는 정부의 추진력이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