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노 감독 다큐 ‘어떻게 해야 했을까’
발달장애아 사망 사건 본 뒤 영화화 결심
“부모·가족 낙인찍는 대신 사회적 지원을”
후지노 도모아키 감독. 엣나인필름 제공
누나 마사코는 다정했다. 공부를 곧잘 하던 모범생이기도 했다. 의과대학은 4수 만에 어렵게 들어갔다. 1983년 스물네 살의 마사코는 안 하던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크게 소리 지르며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의사이자 연구자인 부모는 처음에는 마사코를 정신과 병원에 데려갔다. 하지만 이내 “마사코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부모는 딸에게 찾아온 조현병을 부인하면서 치료 없이 25년을 버텼다. 돌발 행동이 악화하자 현관문에 자물쇠를 채우면서도 부부는 “누나는 ‘그런 병’이 아니며 집에 가둬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부부의 아들이자 마사코의 남동생인 후지노 도모아키 감독(60)이 직접 20여년간 촬영한 누나와 부모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2024년 12월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는 초반 단 4개의 상영관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개봉 8주 만에 전국 100개관 이상으로 확대 상영됐다.
한국 개봉일인 지난달 29일 서울 동작구 엣나인필름 사무실에서 만난 후지노 감독은 가족의 사적인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기까지 “고민을 오래 했다”고 말했다. 애당초 1992년부터 찍은 영상은 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누나가 병원에 갈 때를 대비해 오랜 증상을 설명할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아버지의 환갑을 기념해 찍은 가족사진. 후지노 감독은 “당시 누나는 이미 조현병 증상을 보이고 있었고, 나는 부모님에게 병을 인정하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얘기하던 때”라며 “아버지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남기고 싶어 했지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웃으며 사진 찍는 것이 싫어서 카메라를 보지 않았다”고 전했다. 엣나인필름 제공
어렴풋이 생각만 했던 영화화를 결심한 건 몇년 전 일본의 한 가정에서 발달장애인 아동을 굶겨 죽인 사건을 보고서였다. “우리 집과 비슷한 일들이 아직도 많구나 싶었어요. 현실에 이런 일들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죠.”
시간순으로 제시되는 홈비디오 영상들은 자막으로 설명을 덧대야 할 정도로 짧고 투박하다. 하지만 연도를 건너뛸 때마다 선연히 나이 든 가족들의 모습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화면에 다 담기지 않은 세월이 얼마나 어려웠을지를 짐작하게 된다.
‘당연히 병원에 데려갔어야지’ 생각하더라도 영화를 보다 보면 부모에게 감히 삿대질할 수가 없다. 부모는 대체로 온화한 성정으로, 딸과 대화가 통하지 않아도 그저 감내한다. 집에 자물쇠를 거는 것이 학대 아니냐고 비판할 수 있으나, 집을 뛰쳐나가 미국행 티켓을 끊거나 점술 관련 사기를 당한 마사코를 보고 있자면 함께 마음이 답답해진다.
후지노 감독은 “본인들이 의사이기에 1980년대 정신병원의 열악함을 더 잘 알았을 부모님은 ‘직접 누나를 고치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마사코는 감독의 오랜 설득으로 발병 후 20여년이 흐른 2008년에야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다.
영화는 “누나가 조현병이 된 이유나 조현병이 어떤 병인지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초반부터 명확히 밝히고 시작한다. 마사코가 의과대학에 들어가려고 4수까지 한 것이 부모의 강압 때문이라거나 그것이 병증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추론하기 쉽지만, “어린 마음에 누나가 ‘부모님처럼 되고 싶다’는 영향을 받았을지는 몰라도, 부모님이 저나 누나에게 의사가 되라고 강요한 적은 없다”고 한다.
후지노 감독은 조현병의 원인 등 모든 탓을 부모와 가족에게 돌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사라져야 한다고 봤다. 낙인은 줄고 질병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두꺼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조현병은 그 많은 의사들도 명확한 원인을 모르는 병이에요. 가족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식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제목처럼 ‘어떻게 해야 했을까?’라는 질문이 오래 맴도는 다큐멘터리다. 호평이 이어지며 한국 개봉 3일 만인 지난달 31일 누적 관객수 1만명을 돌파해 장기 흥행이 예상된다.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가 담긴 만큼 추후 OTT나 VOD로 서비스하지 않으며 극장 상영만 이뤄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