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출장 중 일정이 맞아 도쿄에서 열린 2026 헌법대집회에 참석했다. 2월27일 국회 앞 응원봉 시위와 3월28일 오타쿠 반전시위를 기점으로, 5월3일 전국 시위 참여자가 9만5000명에 달했다. 2015년 안보법제 반대 투쟁 이후 최다 인파다.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의 9조 자위대 명기 및 긴급 사태 조항 신설 등 개헌 추진과 2월28일 이란 전쟁 발발로 일본이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배경이 됐다. 현재 참가자 규모는 줄어든 상태이지만, 시위는 장기전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한국의 미디어는 ‘응원봉 시위’가 일본의 시위에 영향을 줬다는 측면을 주로 부각했는데, 이는 ‘국뽕’을 자극하는 단편적인 시각이다. K팝을 틀고 춤을 추며 행진하는 2024년의 탄핵 광장 이전에, 이미 일본의 2015년 안보법제 투쟁에서 주목받은 ‘사운드 데모’가 있었다. 현재도 도쿄 곳곳에 전자음악을 틀고 춤을 추는 레이빙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데, 이에 영향받은 게 6월20일 이태원에서 열린 “팔레스타인을 위한 자긍심, 저항과 소음” 레이빙이다.
2026년 일본 반전평화 시위의 가시적 특징은 한국의 탄핵 광장처럼 젊은 여성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2015년 시위에서도 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로 상징된 청년층의 참여가 주목받았다. 그러나 “어떤 아이도 죽이지 말라”는 ‘어머니’의 모습만이 여성에게 안전한 자리였다. 당시 시위에 참가한 젊은 여성들은 시위 안팎에서 무수한 성희롱과 혐오발언을 겪어야 했다.
한국의 2016년 탄핵 시위에서도 여성은 집회에서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받지 못했지만, 그랬기에 더 많은 젊은 여성이 2024년 광장으로 나와 혐오를 문제 삼고 목소리를 냈다. 이 8년 시차에는 페미니즘이 일으킨 사회적 변화가 놓여 있다. 일본의 2026년 시위도 젊은 여성들의 참여 속에서 2015년과는 분위기가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2015년과 2026년 사이, 일본도 성범죄 무죄 판결에 항의하는 플라워 데모, 여성 복장 규율에 반대하는 쿠투운동 등을 겪었다. 여기에 한국 페미니즘 서적과 소설이 영향을 주기도 했다.
문화는 ‘원산지’를 따지는 것보다 동시대적 감각의 표지로 읽어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일본에서 이번 시위를 촉발한 건 ‘오타쿠’였다. 그들은 “최애가 있는 세계를 전쟁터로 만들지 말라”며 시위를 조직하고, 좋아하는 캐릭터의 굿즈를 가지고 나와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불렀다. 한국에서도 2024년 탄핵 광장을 지킨 건 ‘나라 구하러 나온 덕후’였다. 그들은 자유발언과 깃발에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인용하며 자신의 감수성으로 민주주의와 페미니즘과 평등을 말했다. 더욱이 한·일을 넘어, 만화 <원피스>의 해적 깃발은 인도네시아·남미·유럽·아프리카의 시위로 뻗어나가고 있다.
미국이 추락하고 중국이 굴기하는 지금의 전환기에서, 한국은 주한미군과 전시작전통제권, 일본은 평화헌법, 대만은 양안관계와 전쟁위기라는 이슈에 봉착해 있다. 모두 당사국만의 이슈가 아닌 동아시아 전체가 얽힌 문제다. 이런 위험한 시절일수록 서로 만나고 연결되는 일이 긴요하다. 평화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그로부터 나올 것이다. 35년 전 8월, 김학순의 공개 증언이 나비효과가 되어 평화와 연대의 동아시아를 만들어온 것처럼.
최성용 사회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