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용장리 등
충남 서산 운산초등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거대한 초록 지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덩굴줄기들이 서로 감기고 포개진 채 시렁을 타고 사방으로 뻗어 이룬 그늘이다. 동서로 10m, 남북으로 15m, 넓이로는 150㎡에 이른다. 한 그루의 덩굴식물이 지은 그늘이 웬만한 초등학교 교실 세 칸에 이를 만큼 넓다.
‘서산 용장리 등’이다. 흔히 ‘등나무’라고 부르지만,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추천명은 ‘등’이다. 덩굴식물과 목본식물을 구별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하지만 ‘경주 오류리 등나무’ ‘서울 삼청동 등나무’ ‘부산 범어사 등나무 군락’과 같은 천연기념물에는 여전히 ‘등나무’라는 이름을 쓴다.
산림청이 지정한 보호수 가운데 ‘등’은 한 그루밖에 없다. 보호수로 지정한 2016년에 추정한 수령 150년쯤 되는 ‘서산 용장리 등’의 실체는 가까이 다가서서 얽히고설킨 덩굴줄기에서 느낄 수 있다. 여러 줄기가 비틀리고 꼬이며 이룬 둘레는 측정이 불가능하다. 하나의 줄기를 측정하는 여느 나무의 측정법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서산 용장리 등’이 자리 잡은 서산 운산초등학교는 1921년에 ‘4년제 보통학교’로 문을 열었다. 학교를 짓기 전부터 이 자리에 서 있다고 전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근거해 이 식물의 나이를 150년으로 추정했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다.
느티나무나 소나무처럼 학교의 상징이 될 만큼 오래 살아가는 나무들과 달리 ‘등’은 실용적인 그늘을 얻으려고 심어 키운 탓에 굳이 기록으로 남길 이유를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기록이 남지 않은 빈자리를 한 그루의 덩굴식물이 거대한 몸에 남긴 세월의 흔적으로 대신할 뿐이다.
해마다 아이들은 이 초록 지붕의 그늘을 떠나고, 아이들 떠난 그늘에는 새로운 아이들이 찾아와 머무른다.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은 바뀌어도 뒤엉킨 등의 줄기는 그 모든 시간에 담긴 사람살이를 품어 안는다. 숨 막히는 이 무더위에 오래된 ‘등’은 말없이 지나간 아이들과 아직 오지 않은 아이들을 그리며 잎 하나 더 얹어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