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불온한 생각 하나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스스로 무너지는 순간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 불길한 기운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민주당은 당원 주권주의 이름 아래 당원을 당 권력의 주체로 세웠다. 그러나 당원은 선출되지 않는다. 중요한 결정을 하지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게다가 그 결정은 조직된 강성 당원의 분노와 열광에 쉽게 이끌린다. 민주당은 책임지지 않는 열정이 지배하는 정당이다.
당원이라는 거친 바다 위를 이리저리 파도에 휩쓸리며 떠도는 조각배 같은 민주당에, 이재명은 공소 취소라는 거대한 짐을 실었다. 그는 자신의 재판을 없던 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이 보유한 권력은 물론 당 자원까지 다 동원할 태세다.
당 지도자라면, 감당하기 버거운 짐을 실은 당이 기우뚱한 상태로 항해할 때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권력이 당원으로 이동한 뒤 민주당에는 균형을 잡을 정치적 중심이 사라졌다.
당대표 경선 주자들이 하는 일은 당을 일으켜 세울 구상을 내놓고 당을 추스르는 게 아니라, 당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추락경쟁이다. 차이가 없는 이들 사이의 심각한 대결을 지켜보노라면, ‘왜들 저러지?’ 하는 의아함이 고개를 든다.
당 지도급 인물이 저러는 동안 의원들은 자기 몫을 다하고 있을까? 당원은 당원 주권주의를 내세워 의원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 의원은 국민을 대표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라는 헌법적 요구보다 당원의 의사를 전달하는 대리인 역할에 머물고 있다. 민주당에서 의원 목소리는 사라졌다. 침묵을 선택하고 강제한 결과다.
당원들은 책임 없는 권한을 행사하고, 대통령은 당을 사법 리스크 해결 도구로 여기고, 경선 주자들은 이전투구하며, 의원들마저 스스로 눈·귀·입을 닫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보완수사권 논란을 보자. 보완수사권은 검찰개혁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남은 쟁점이라 커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보완수사권이냐, 보완수사 요구권이냐는 본질과 무관한 쟁점이다. 보완수사권이 없으면 재앙이 닥친다거나, 그걸 살려두면 검찰개혁에 실패한 것이라는 주장은 다 과장이다. 당분열의 대가를 치르면서 갈등할 사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집권세력은 이 문제를 두고 쩔쩔맸다. 대통령이 보완수사권 유지를 원했으면서도 당원을 설득하지 못했고, 결국 당원 의견을 따르기로 했으면서도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 검찰개혁 완성이라는 성과를 결함 있는 개혁처럼 보이게 만들고, 내부 이견을 조정하지 못해 갈등을 키우는 집단적 무능을 드러냈다.
당이 이렇게 흔들린다 해도 당 이념과 가치를 놓치지 않고 있으면 적어도 당 정체성은 지킬 수 있다. 민주당은 한때 개혁을 바라는 시민의 의사가 결집된 정치세력이었다. 다른 저지선이 다 무너져도 민주당을 민주당답게 지켜줄 마지막 보루는 당 이념과 가치다. 그러나 국회의장이 개헌을 통한 현직 대통령 연임 가능성을 공식 언급하면서 그것마저 허물었다.
연임 발언은 시민이 상상하지 못한 것을 상상했다는 의미에서 비상계엄을 닮았다. 상상불가의 것을 가능성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인 것 자체가 이미 시민에 대한 일격, 심리적 쿠데타다.
몰래 하는 쿠데타와 달리 연임 추진은 그 가능성을 공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측근들이 줄기차게 희망해온 순간일 것이다.
노무현·문재인이 연임제 개헌을 제안하면서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은 것은 헌법이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민주화 투쟁의 자랑스러운 성취인 헌법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당의 지도자가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재명 측근 출신 의장은 헌법정신이 아니라, 이재명을 향한 충성을 우선했다. 집권세력은 분별력을 완전히 잃었다.
건강한 정치집단이라면, 선을 넘기 전에 내부 논의와 조정을 통해 걸러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자기를 제약하고 규율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했다. 민주당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이제 없다.
민주당이 죽어가고 있다.
이대근 우석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