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부짖는 포구, 호포(號浦) 마을에서 벌어지는 장르 불명의 소동극 <호프>는 의미 찾기를 거부하는 장치로 가득하다. 그래서일까, 자꾸 의미를 찾고 싶게 만든다. 갑자기 중화기를 들고 나타난 성애에게 범석은 그게 어디서 났는지 묻는다.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니잖아요!” 성애의 대답은 이 영화가 설정한 세계에서 개연성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일갈로 들린다. 자연히 떠오르는 한마디, 그럼 “뭣이 중헌디?”
육중한 무게가 실려서 더욱 혼을 빼놓는 속도감 속에서도 차곡차곡 쌓이는 건, 같음과 다름에 대한 질문이다. “봤어?”라는 여러 번의 답답한 다그침 끝에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흉물스러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그로테스크하게 묘사되는 보건소장의 시신 해부 장면에서 역시, 같고 다름의 기준은 인간이다. 하지만 범석이 방아쇠 당기기를 망설이게 한 그렁그렁한 눈동자는, 냉동 상태로 클로즈업되는 아기 외계인의 귀여운 콧방울은, 점차 우리와 ‘같은’ 존재가 된다. 급기야 그들이 언어를 지닌 존재라는, 그것도 거의 울부짖기만 하는 인간들과 달리 극한의 상황에서 희망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이것과 저것, 나와 남의 경계마저 전복시킨다.
그 안에서 인간은 하찮고 무력한 데다가, 사악하다. 몇번을 까마득히 내동댕이쳐져도 불사신처럼 덤벼드는 성기의 모습에서 보이는 과장과 과잉마저, 고양이 피하려 핸들을 트는 바람에 표지판에 맞아 신발만 남긴 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최후의 허무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일 정도다. 동정심에 망설이기도 격분하기도 하는 범석의 모습에서 거룩한 휴머니즘을 끌어내기에는, 실수로 사람을 쏜 잘못을 덮으려는 뻔뻔함에 턱 걸린다.
결말뿐 아니라 이 영화에서는 뭐 하나도 완결되지 않는다. 대화들도 주고받다 말고 끊어진다. 몇 안 되게 완결되는 대사가 있다면 이것이다. “일단 달려.” “그다음엔요?” “나도 잘 모르겠어. 머릿속이 정리가 안 돼.” 개연성도 영화적 문법도 사라진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완결 없이 진행되기만 하다가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삶이 아닐까? 그리고 그 안에서 지긋지긋하게 이어지는 하찮은 구별짓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