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기피 현상
아이들 아파도 치료할 의사가 없다
비수도권은 더 심각…정부 대책은?
전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신생아중환자실 김진규 교수가 지난달 29일 병원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지난 6월, 전북의 유일한 권역모자의료센터인 전북대병원 신생아중환자실을 홀로 책임지던 김진규 소아청소년과(소청과) 교수가 공개적으로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당시 그는 “모든 것을 버리기로 결심할 만큼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어요. 의사들이 이른바 ‘돈 안 되는’ 소청과·산부인과를 기피하면서, 김 교수 같은 소수의 의사들이 극심한 과로에 노출됐습니다.
공개 사직으로 지역 필수의료 공백 문제를 드러낸 김진규 교수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상황이 바뀌어서는 아닙니다. 아픈 아이들이 눈에 밟혔으리라 짐작할 뿐이지요. 경향신문이 다시 만난 그는 여전히 열악한 지역 필수의료 체계를 향해 쓴소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픈 아이들 곁에, 의사가 없다
2012년 전북대병원 어린이병원에 합류한 김진규 교수는 건강을 되찾는 아이들을 보며 보람차게 일했습니다. 지난해 9월과 올해 3월 소청과 교수 2명이 잇따라 병원을 떠나면서 김 교수와 입원전담전문의 2명만 남았습니다. 김 교수는 주 90시간 노동에 50시간의 연속 근무, 평일 최소 사흘 당직 근무를 해야 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고장나기 시작했지요.
김진규 교수는 지난 6월30일 사직 의사를 밝히며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만두는 마음은 제가 제 등에 칼을 꽂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답이 없습니다. ‘여기 불났다’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에요.”
전북대병원만의 일이 아닙니다. 올해 상반기 소청과 신규 레지던트 모집 충원율은 20.6%(34명)로 전체 모집과 중 가장 낮았고, 그나마도 수도권에 집중됐어요. 비수도권 소청과 전문의는 10명 중 6명이, 산부인과 전문의는 10명 중 8명이 50세 이상으로 고령화됐고요. 전국 권역모자의료센터 20곳 중 17곳은 소청과 전공의가 없거나 1명뿐이었고 11곳은 산과 전문의 최소기준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경향신문이 전문의 취득을 앞둔 소청과 3~4년차 전공의들을 만나 물어봤습니다.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다음 세대 소청과 모임’이라는 단체를 만들 정도로 열정적인 이들조차 고개를 저었습니다. 한 전공의는 김진규 교수의 사직을 두고 “그나마 신생아중환자실은 떠날 사람이 있으니 화제가 되지만, 이미 떠날 사람조차 없이 ‘멸망’ 수준인 다른 소청과 분과들이 많다”고 했어요.
소청과 의사들이 보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수가가 지나치게 낮아요. 한 전공의는 “소청과는 원가 1만원을 투자해 7900원을 번다”며 “환자를 보면 볼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라고 했어요. 어떤 병원에서는 병원장이 ‘사람을 볼수록 적자니까 소아 입원 환자를 받지 말라’고 했다고 해요.
또 하나는 높은 소송·민원 부담입니다. 소아는 성인보다 질병에 취약하고 치료·수술 난이도도 높은데, 의료사고 발생 시 배상액도 소아가 성인보다 훨씬 많습니다. 한 전공의는 “고의로 사람을 해쳤다면 당연히 처벌받아야겠지만, 열심히 일하다가 일어난 일로 과한 수사나 본보기식 조사를 받는 경우가 있다”고 했어요. 다른 전공의는 “교수님들이 자기 삶도 없이 일하는데 소송에까지 시달리는 모습을 보면 젊은 의사들은 ‘저렇게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산부인과 사정도 다르지 않고요.
김진규 교수의 첫째 딸이 ‘사직파티’를 열면서 만들어준 롤링페이퍼. 김 교수 사직 소식 게시물에 달린 환자들의 댓글이다. 사진·본인 제공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진규 교수는 “소청과 전반의 수가를 더 올려 건강보험 급여 진료만으로도 소청과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어요. 김 교수는 이어 “그냥 수가만 올리면 의사가 다 수도권으로 집중될 것”이라며 지역 가산, 지역의사제 보완 등이 필요하다고도 했습니다. 한 소청과 전공의는 “의료분쟁조정법이 논의되고 있는데, 10년 후에나 완성이 된다면 그사이 소청과는 다 없어질 것”이라며 “속도감 있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소청과 의사들은 힘든 현실에서도 아픈 아이들을 향한 애정과 열정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본인도 희소 질환을 앓고 있다는 전공의는 “저 같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질환을 이야기하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해서 살아갈 때까지 도움을 주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고 했어요. 김진규 교수는 “내가 내 생명을 갉아서 아이한테 주는 것 같다고 생각하곤 한다”며 “그런데 아이들은 목숨을 걸고 나를 가르쳐준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궂은일을 마다 않는 의사들이 소진되지 않도록, 정부가 길을 잘 찾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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