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부처 업무보고에서 보고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등 ‘메가특구’의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 논의와 관련해 장시간 노동이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메가특구특별법(가칭)과 관련해 재계가 노동시간 규제 완화 조치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지만, 정작 반도체 기업들이 특별연장근로 등 기존 제도를 잘 활용하지 않고 있는 점도 거론했다.
김 장관은 5일 정부세종청사 구내식당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오찬간담회에서 “반도체특별법에서도 주 52시간 예외 특례가 안 들어가면 ‘앙꼬 빠진 찐빵’이라고 했는데, 그게 없는데도 (기업들이) 지금 어마어마한 실적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52시간제 특례 논의가) 너무 예송 논쟁처럼 되면 안 된다. 실질에 기초해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달 시행에 들어가는 반도체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재계가 요구한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 조항이 빠졌는데도 반도체 기업들이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는 지적이다.
김 장관은 “52시간 특례가 메가특구특별법의 상징처럼 됐는데, 실제 보면 (현행 제도에서도) 특별연장근로가 1년까지 가능하다. 그게 ‘화이트칼라 이그젬션(면제)’과 마찬가지”라며 “그런데 (기업들이) 신청을 안 한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신청이) 아예 없다”고 말했다.
특별연장근로는 재난이나 돌발적인 업무 증가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때 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주 최대 64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김 장관의 발언은 기업들이 기존 제도를 충분히 이용하지 않으면서도 주 52시간제 특례를 요구해 논의가 과열되고 있다는 취지로 읽힌다.
실제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에서 5개 분기 연속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하고 있는 SK하이닉스는 2023~2024년 특별연장근로를 한 차례도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의 경우 3개월간 380명이 이 제도를 활용했으나, 이 가운데 고강도 노동이라 할 수 있는 주 60시간 이상 일한 노동자는 4명으로 전체의 1.1%에 그쳤다.
김 장관은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하자는 이야기는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이게(52시간 예외) 빠지면 안 되는 것처럼 너무 과잉돼 건강한 토론이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김 장관은 “메가특구특별법과 관련해 정부에서 확정한 건 없고, 지금은 논의를 숙성하는 과정”이라며 “주무 장관으로서 노동계와도 충분히 소통해 진행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만나겠다고도 했다. 최근 양대 노총은 공동 성명을 내고 정부가 추진 중인 메가특구특별법을 ‘노동 개악 정책’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이재명 대통령 면담을 요구한 바 있다.
앞서 노동부는 지난달 27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노동시간 규제 완화, 기간제 사용 기간 연장, 파견 확대 등 각종 노동규제 완화 조치를 담은 메가특구특별법 추진 방안을 보고했다.
정부가 보고한 잠정안에는 노동자 개별 동의를 전제로 소득 상위 3%인 관리자·연구개발자에 대해 주 52시간 근로 상한뿐 아니라 법정 휴게시간과 휴일 규정,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적용을 제외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 방안이 담겼다. 기간제 노동자의 서면 합의를 전제로 사용 기간을 현행 2년에서 추가로 2년 연장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정부는 메가특구특별법과 관련해 확정된 사안은 없으며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입장이지만, 부처 간 이견도 감지된다. 메가특구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부는 “대부분 이견이 해소된 상황으로 막바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지만, 김 장관은 노동계 의견을 추가로 듣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장관은 정부가 검토 중인 기간제 기간 연장, 파견 확대 등과 관련해서도 “메가특구와 관련해 기업들의 오래된 요구들이 있다”면서 “합리적으로 토론하면 된다고 본다. 입장 차이를 없앨 수는 없고 사실관계에 기초해서 합리적인 대안을 찾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의) 방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속력이 빠르다고 방향을 역주행하면 안 된다. 사회가 동반 성장하기 위해서는 (속력과 방향의) 균형감각이 대단히 중요하다”고도 덧붙였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김 장관은 메가특구특별법에 대한 개인적 입장을 묻는 질문엔 “대통령께서 위기 속 기회 요인을 만드는 게 기획자라고 하셨는데, 위기 속에 기회를 찾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