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은 진짜 좋은 동네다. 직장 가깝지, 공공편의시설 많지, 학군 좋지, 교통은 얼마나 편리한지. 지하철역 밀집도는 말해 뭐하며 버스 하나로 안 닿는 곳이 없고, 길 정비도 잘돼 운전하기도 편하다. 나처럼 주로 경기권에서 운전하는 사람은 강남에 가면 포트홀 없는 매끈한 도로, 합리적 신호체계에 얼마나 감탄하는지 모른다. 모든 게 좋다. 이 정도로 좋은 동네는 전국에서 강남밖에 없다.
물론 그 ‘수많은 장점’은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강남은 강북 도심에 채소를 공급하는 한적한 농촌이었다. 특히나 반포동 같은 동네는 지대가 낮아 큰 폭우가 내리면 침수되기 일쑤였다. 장마철, 잠원동 나루터에서 타고 다니던 나룻배가 끊어지면 사람들은 동작동 이수교까지 걸어 나가 버스를 탔다고 한다. 강남에 오랫동안 사람이 살기 어려웠던 이유였던 침수피해는 1970년부터 제방도로가 건설되고, 무엇보다 1973년 춘천에 소양강댐이 완공되며 줄어들기 시작했다.
박정희 정권은 1970년대부터 강남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만원도시 서울의 ‘인구 분산’이 목적이었다. 게다가 1968년 1·21사태가 발생하며 안보가 지상과제가 되자 휴전선으로부터 40㎞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강북은 너무도 위험해 보였다. 곧 유신이 선포되었으니 국가의 조치에 제동을 걸 만한 힘은 아무것도 없었다. 1975년 현재의 호찌민시인 사이공 함락은 강북 인구의 분산과 강남 개발에 지상명령을 부여했다.
1972년 박정희 정부는 강북을 특정시설제한구역으로 설정해 제조업체와 백화점, 도매시장 등의 신규 시설을 불허했다. 1973년엔 무려 강북 도심 건물의 신축과 개축, 증축을 금지했다. 동시에 강남은 개발촉진지구로 선정됐다. 수많은 상업시설이 아무런 규제 없이, 특별법에 따라 취득세와 재산세가 면제되는 강남으로 옮겨갔다(송은영, <서울탄생기> 푸른역사 2018).
아파트는 또 어떤가. 1976년 ‘도시계획법 시행령’을 개정해 ‘아파트지구’ 제도가 도입됐다. 반포, 압구정, 잠실 등 강남을 상징하는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만들어졌다. 1980년엔 기존 토지소유권이나 도시계획 법률을 무력화하는 ‘택지개발촉진법’이 제정돼 개포·고덕 지구가 만들어졌다.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가 정치적 기반을 만회하려 내세운 ‘주택 500만가구 건설’을 위해서였다.
베드타운이 되지 않게끔 대법원·검찰청 등 정부기관을 이전했고, 강북에 산재하던 고속터미널을 한데 모아 강남고속터미널을 만들었으며, 경기고·휘문고 같은 명문 고교를 파격적인 혜택을 주고 강남으로 이전했다. 한마디로 강남은 발전주의 시기, 권위주의 국가가 일부러 선택하고 집중 육성한 결과물이다. 민주화가 되고, 신자유주의 시대가 되자 강남은 멈추지 않는 페달로 굴러가는 자전거처럼 발전을 거듭했다. 이제는 특정시설제한구역 같은 방법을 쓸 수 없지 않은가. 이후 국가가 아무리 신도시를 만들려고 해도 강남처럼 ‘모든 게 좋은’ 동네를 만들 수 없는 이유다.
그러니 ‘한집에 오래 살았을 뿐인데’ 고액의 세금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연은 안타깝지만, 반쪽의 진실일 뿐이다. 1986년 서울 가구당 연평균소득은 약 600만원,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35평 매매가가 약 6000만원이었다. 통계마다 다르지만 2024년 서울의 가구당 평균소득은 약 6000만원, 똑같은 아파트가 44억이 됐다. 평균소득이 10배 뛸 동안, 똑같은 집이 70배가 넘는 가격이 돼버린 것이다. 소득 대비 엄청난 자산가격 상승은 운이 좋거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었다. 그러니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기존의 방법이 맞는지, 어떤 나은 대안이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지금의 자산가격이 국가의 뒷받침으로 형성됐고, 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걸 인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혁은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