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도 너무 더운 날, 절친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디 가지 말고 시원한 곳에 있어.” 곧바로 대답했다. “도어 투 도어로만 움직일 예정.” 친구는 다시, 무더위로 지친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만드는 환한 웃음이 담긴 이모티콘을 투척했다. 35도가 넘어선 그날, 함께 웃을 일이 있어 다행이라고 혼자서 생각했다. 별것 아닌 일로도 마음을 나눌 친구가 있다는 건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해마다 사상 최고 기온을 경신하는 이 더위는, 장삼이사의 마음 나눔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재난 중 재난이다.
우리 몸은 더위에 맞서기 위해 땀을 흘리며 열을 몸 밖으로 내보낸다. 하지만 습도가 높으면 땀이 증발하지 않기 때문에 열을 내릴 수 없다. 열이 내리지 않으면 장기들은 제 기능을 못하게 되고, 최악의 경우 사망한다. 인도 북부에 상상을 초월한 폭염이 닥쳤다. 기온은 인간 체온 조절 한계선 ‘습구온도 35도’를 넘나들었다. 섭씨 50도 내외였고, 습도는 최악이었다. 전력망이 마비되자 두 주 사이 2000만명이 죽었다. 놀라지 마시라, 현실 일은 아니다. 미국 작가 킴 스탠리 로빈슨의 <미래부> 도입부 이야기다.
탄소 감축이 목표였던 파리기후협정이 실패로 끝난 가까운 미래에 닥친 이 재난을 극복하고자 국제기구 ‘미래부(the Ministry for the Future)’가 조직된다. 미래부 역할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생명체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뿐 아니라 멸종위기에 놓인 생명체 등등이 그 대상이다. 미래부와 함께 태어난 조직이 하나 더 있다. 급진적 에코 테러조직 ‘칼리의 아이들(Children of Kali)’은 드론으로 탄소 배출 주범들, 즉 항공기와 컨테이너선, 거대 축산기업 등에 테러를 가했다. 각국 권력자들과 탄소산업으로 막대한 돈을 버는 경영자들을 향한 테러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의 동인(動因)은 제 배만 불리면서 기후위기 비용을 미래세대에 전가하는 자들을 향한 분노였다.
여름은 낭만의 시공간이었다. 유행가는 바다의 즐거움과 추억을 노래하고, 청춘 주연 영화나 드라마는 여름 바다의 흔한 풍경 ‘나 잡아봐라’를 연발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바다는 안전하지 않다. 2018년 발표된 다큐멘터리 영화 <아노테의 방주>(Anote’s Ark)는 태평양 섬나라 키리바시에 닥쳐올 위기를 정면으로 다룬다. 평균 해발고도가 2~3m에 불과한 이곳은 해수면 상승으로 점점 가라앉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먼저 당시 대통령 아노테 통의 외교적 노력을 짚는다. 그는 국제기구와 각국 정상들을 만나 과도한 탄소 배출을 지적하는 한편, 키리바시 주민들이 단순 구호 대상이 아니라 ‘존엄성 있는 이주(Migration with Dignity)’ 권리를 가졌다고 주장한다. 또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뉴질랜드로 이주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기후난민의 경제적 어려움과 정체성의 위기 등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0.1%도 배출하지 않는 키리바시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미래부>는 소설이어서, <아노테의 방주>는 먼 나라 일이라, 지금 우리가 겪는 무더위와는 상관없는 일일까. 세상 모든 일은 얽혀 있고, 그 얽힘 속에서 문제들을 키워가고, 한편으로는 해결책도 모색한다. 물론 칼리의 아이들은 정상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아노테의 외교적 노력은 강대국의 철저한 무시로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했다. 어떤 방법이라도 찾아야 한다면, 그건 오늘날 기후위기의 주범인 인류 몫, 곧 우리 책임이다. 무더위 속에 에어컨도 켜지 못하는 쪽방촌 사람들의 안위를, 찬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걱정하는 내 모습이 다만 기괴할 뿐이다.
장동석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