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주민센터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서고에서 볼만한 책이 있는지 훑어보았다.
서고를 나오려고 할 때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책더미 속에서 익숙한 저자들의 책이 보였다. 어느 시절엔 손길이 많이 닿았는지 하나같이 낡은 그 책들 속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친구의 책이 보였다. 그가 쓴 책을 손에 들고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 무너지듯 의자에 앉았다. 마침 그 쾌적한 방엔 아무도 없어 다행이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의식이 없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들었던 그는 나를 알아보았다. 내가 여러 번의 집들이 초대를 미루던 중 어느 날 갑자기 그는 중환자가 되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은 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귀에 대고 말했다.
“마음 편히 있어. 우리 모두 오만 곳에서 마음 편히 살려고 안간힘을 쓰잖아. 어디에 있든 마음이 편하면 그게 최상이야. 그러니, 마음 편히 있어. 그러면 돼.”
친구도 나도 우는 줄도 모른 채 울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러 너무 늦게 갔는데, 그것은 너무 이른 나이에 속절없이 누워 있는 그를 대면해야 할 나의 내면이 너무도 약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는 그렇게 누워 있는 친구를 볼 용기가 없었다.
주민센터 서고엔 존경하던 선배의 책도 있었다. 임종하기 열 시간 전에 그를 본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던 그도 분명히 나를 알아보았다.
그분의 야윈 다리를 내려다보다가 시선을 들었을 때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들었던 그가 눈을 뜨고 더없이 슬퍼 보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깜짝 놀란 내가 많이 아프죠, 라고 묻자 그가 그렇다며 입을 달싹이다 말이 밖으로 나오지 않자 눈으로 말했고, “아, 어떡하면 좋아요” 하던 나는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대화인 줄도 몰랐다.
인간이 마지막 순간까지 의식이 있는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나는 정말 혼란스러웠다. 혼자 돌아오는 집은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나는 주민센터 서고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너무도 일찍, 너무도 안타까운 사연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난 지인들의 갑작스러운 애도의 시간이 지나자 가끔 만나는 변호사 친구가 생각났다. 한참 아래 연배인 그는 내가 앉아 있던 그 방에서 주민들에게 무료 법률상담을 하곤 했다. 식사하셨어요, 라며 가끔 내게 안부를 묻고, 명절엔 현관문 앞에 선물 상자를 놓고 가기도 하는 그는 그리스철학이 좋아 정치학을 전공했으나 뒤늦게 변호사가 되었다.
선량한 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거운 마음이 씻기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그 서고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하다가 얼마 전에 그 일을 그만두었다. 최근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 왜 우리 동네의 법률상담 봉사를 그만뒀는지 물어보았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어주고 싶었는데, 세입자를 어떻게 쫓아내야 하는지 궁리하는 사람들만 상담하러 와서 힘들었어요.”
부자들이 알뜰하게 무료 법률상담을 받는 동안 정작 당사자인 세입자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기나 했던 걸까.
조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