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3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화폐수납장에서 관계자들이 추석 화폐 공급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공정거래위원회가 국고채 입찰 과정에서 은행·증권사들의 담합 혐의를 포착하고 조만간 결론을 내린다. 담합으로 추정되는 입찰 규모가 76조원에 달해 과징금도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울 가능성이 나온다. 금융권과 재정 당국은 제재가 과도할 경우 국채 시장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
공정위 사무처는 국고채 입찰 담합 사건과 관련한 심사보고서를 지난해 2월말 공정위에 제출하고, 15개 국고채 전문딜러(PD) 사업자에게 같은 해 3월 10일 송부했다고 6일 밝혔다. 심사보고서는 공정위 심사관이 조사 과정에서 파악한 위법성과 제재 의견을 담은 문서로 최종 판단은 전원회의 등에서 결정된다.
공정위는 이달 중 전원회의를 열고 국고채 담합 사건의 제재 여부와 수위를 결정할 계획이다.
국고채는 도로·복지·국방 등 국가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으로 경쟁 입찰 방식으로 발행된다.
공정위 심사관은 ‘국고채 전문딜러’(PD)로 지정된 은행·증권사 15곳이 2020년 1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약 3년6개월 간 국고채 입찰 담합 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이들이 입찰 전 금리·가격·물량 등의 정보를 사전에 공유한 혐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행위로 국고채 금리가 상승해 정부 부담이 늘어났다고 판단했다.
공정위 심사관은 이번 사안을 ‘매우 중대한 위법행위’로 판단하고, 시정조치와 과징금 부과, 법인 및 전·현직 임직원 고발 의견을 위원회에 제출했다.
담합 혐의 규모는 약 76조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대 과징금 부과율 20%를 적용하면 15조원의 과징금 부과가 가능한 셈이다. 이는 공정위 역대 최대였던 퀄컴 사건(1조311억원)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대상은 교보, 대신, 메리츠, 미래에셋, 삼성, 신한, NH투자, KB, 한국투자, 키움 등 증권사 10곳과 국민, 농협, 중소기업, 하나, 산업 등 은행 5곳 등 총 15곳이다.
국고채 유통 방식은 재정경제부가 주관하는 입찰에 은행과 증권사는 참여해 낙찰받고, 이를 시장에서 다른 투자자에게 매도하며 유통시킨다. 정부는 일부 회사만을 PD사로 지정해 입찰 참여 권한을 부여하는 대신, 이들이 유통시장에서 국채 거래를 활성화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PD는 18개사, 예비 국고채 전문딜러(PPD)는 5개사다.
은행과 증권사들은 그러나 입찰 과정의 정보 공유가 통상적인 시장 동향 파악 차원이었다며 담합 의혹을 반박했다. 과징금 산정 기준도 국고채 낙찰금액이 직접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 만큼 영업수익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정 당국은 제재 수위가 높으면 PD사들이 국채 거래를 축소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과징금 부과로 PD사의 참여가 위축되면 정부가 원하는 금리 수준에서 국채를 발행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조사를 마치고 처음 관련자들에게 심사보고서를 보낸지 1년 넘게 지나고도 전원회의가 열리지 않은 배경에는 보고서 분량만 1만2000쪽에 달할 정도로 방대해 공정위원들에게 충분한 판단 시간을 주고, PD사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의견제출 기한을 다른 사건보다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준 데 있다.
재경부도 공정위에 PD 제도의 중요성과 시장 영향을 고려해달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장 반칙 행위를 바로잡는 조치이므로, 유럽연합(EU) 등 해외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담합 제재가 자금 조달이나 시장 신용도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재경부도 입찰 담합 문제에 대해선 공정위와 뜻이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