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꿈을 꾸었다. 시냇가에서 물장구치며 놀고 있는데 다리가 점점 길어지더니 아연 솔기 터지듯 발끝부터 흐물흐물 물에 녹지 않겠는가. 피는 나는데 아프지는 않았다. 덜컥 겁이 나서 얼른 일어나 죽어라 밭 가운데 전봇대를 향해 뛰어갔다. 전깃줄에 누가 앉아 있었다. 더위 탓인가. 깨고 보니 목 주위가 땀으로 척척했다.
자동차가 아니라면 어디서 이런 속도를 경험하랴. 무슨 수로 세상의 옆구리에서 다른 세계를 빼낼 수 있으랴.
여행을 가면 전봇대에 유의한다. 나라마다 다른 전봇대. 나의 어린 시절은 골짜기로 성큼성큼 달아나는 전봇대의 웅웅웅 소리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긴 것은 기차지만 나에겐 전봇대도 있다. 육상선수처럼 골짜기로 달아날 때도 길고, 무밭 한가운데에서 쳐다볼 때도 충분히 길었다.
이 더운 날씨는 어디에서 오는가. 아무리 덥더라도 하늘을 꼬집을 수는 없다. 대기는 대지를 만들고 땅은 공중을 만든다. 지구와 대기가 합심하여 진화하는 내용을 다룬 KBS 다큐멘터리, <지구의 시간>. 생명의 기원은 학설이 많다. 심해, 운석에서 찾기도 한다. 지구 초기의 생물의 단서를 찾아서 간 곳은 안데스산맥의 타티오 간헐천이다. 칠레였다. 그러고 보니 요즘 뉴스에 칠레가 많이 등장한다. 대통령 일행이 칠레를 순방해서도 그렇고, 네이버에서 칠레라고 치면 이런 뉴스도 뜬다. “칠레 중남부에는 강한 폭풍우가, 아르헨티나 서부 산악지대에는 기록적인 폭설.”
칠레는 그야말로 길다. 남미 대륙이 의지하는 지팡이 같다. 남극을 딛고 위쪽 대륙을 치받는 칠레. 무려 4300㎞의 그 지팡이는 유럽을 세로로 충분히 꿰뚫고도 남는다. <총, 균, 쇠>에서 동서보다 남북으로 긴 나라가 문명이 발달하기가 불리하다고 했지만 칠레는 선진국에 들고 정치적으로 안정된 나라. 요즘 나에게 긴 것은 전봇대가 아니라 칠레다.
나이는 물론 나의 생도 이어붙이면 상당히 길어졌다. 긴 것에 대한 생각도 많아졌다. 덥다와 길다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그러다가 칠레? 아침 세수하다가 문득 나는 칠레처럼 길다, 중얼거리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왜 뜬금없이 칠레? 묻는다면 나의 답은 이렇다. 마,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