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불타는 시민들
전혜진 외 지음 | 구픽 | 204쪽 | 1만4800원
또 하나의 ‘계엄 관련 책’이다. 계엄 때문에 ‘빡친’ 작가들이 쓴 소설, 에세이, 선언문, 만화가 쉴 틈 없이 나왔고 앞으로도 나올 것이다. SF 계엄 소설은 없는지 궁금한 분도 있을 것 같아 소개한다. 이 책에는 “민주주의 장르 단편선”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단편 다섯 편 모두 이상한 일을 겪는 시민들이 민주주의가 이렇게 어려웠냐고 이를 벅벅 가는 내용이다. SF의 단골 요소인 인공지능(AI), 우주함대, 시간여행 같은 소재가 등장한다.
계엄과 탄핵 정국을 겪으며 사람들은 많은 스트레스와 감정 고조를 겪었다. 길에 나가 싸우느라, 황당한 주장을 듣느라, 더러는 친구나 애인, 가족과 싸우느라. 계엄이 몇시간 만에 해제됐다지만, 나는 그 여파로 폭등한 환율, 원자재값 상승, 정세 불안으로 큰 사업적 타격을 입었다. 타결을 눈앞에 둔 계약들이 취소됐고 거래처는 지급을 보류했다. 논의 중이던 기획도 줄줄이 중단됐다. 흔들림 없이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80대 어머니에게 당신이 뽑은 대통령 때문에 내가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 아느냐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어떻든 취소하지 않았냐고, 대통령이 잠깐 실수했을 뿐 잘 처리됐으니 된 거 아니냐 말하는 어머니는 내가 벌었을 뻔한 금액 앞에서 입을 꾹 닫으셨다.
이 책 맨 앞에 실린 ‘제가 모르는 저의 죄들도’는 대통령과 같은 성씨를 쓰면서 계엄 덕에 경제적 이득을 본 한 사업가의 고해성사다. 계엄이 선포되자 국회로 달려간 딸, 평화와 생명을 지켜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말하는 성당 신부, 그래도 계엄은 아니지 않냐고 수군대는 공장 직원들, 자신이 얼마나 고생하며 여기까지 왔는지 몰라주는 주변 사람들. 같은 가문에서 대통령이 나와서 뿌듯했지만 그 때문에 손가락질을 받고 싶지 않았던 사업가는 얼떨결에 시간을 되돌릴 힘을 얻는다. 그리고 계엄을 ‘성공’시킨다. 결과는? 내가 잘못 뽑은 게 아니라는 걸 입증하고 싶어서 내란을 여전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을 위한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 안에서 살고 싶다고 하면 흔쾌히 그렇게 해주고 그토록 아끼는 내란 수괴도 넣어주고 싶다. 단, 뒤늦게 아차 싶어 문을 열고 나올 수는 없다. 역사는 ‘아니면 말고’ 식의 게임이 아니니까. 세상의 안위와 생명의 존엄이 걸린 선택이니까.
그래서일까. 마지막 단편을 읽을 때 얼마나 마음이 철렁했는지. 누군가 1만번 새로고침해서 겨우 지킨 평화, 즉 9999번 세상이 불타봤기에 가능한 이 일상. 그런데 정말 SF 이야기가 맞나?
김시형 그린북 에이전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