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와 ‘일상’ 현대적 재해석 - 시대 초월한 ‘한국 정서’ 찾기

임영주 기자

눈길 끄는 한국화 전시 2제

서양화와 한국화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고 할 정도로 한국 미술계는 서구를 포함한 세계 미술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예술작품은 고유의 정체성이 더욱 중요해지기에 ‘한국적인 정서’에 대한 의문 또한 커졌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 작가, 한국 미술만이 갖고 있는 정서가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 내용은 무엇이고, 어떻게 표현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전시 두 개가 열리고 있다. 서울 남현동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화 판타지-한국화의 감각적 재해석’은 ‘산수화’와 ‘일상성을 표현한 작품’을 주제로 한국성이 반영돼 있는 작품을 골라 전시했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는 ‘춘추’전을 통해 ‘무위자연과 은일의 정서’ ‘자연과 생활’ 등 한국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는 고미술과, 같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현대미술을 연결해 소개하고 있다. ‘한국화 판타지’전이 한국성의 의미를 폭넓게 열어두고 작품에 포함돼 있는 한국성을 관람객이 스스로 찾아보게 한다면, 한국적 정서로 볼 수 있는 11개의 주제를 먼저 설정해 놓은 ‘춘추’전은 한국 현대미술 작업의 본류를 고미술에서 정말 찾아볼 수 있는지 평가·판단해 보게끔 한다.

■ 한국화 판타지

현대 재료 이용한 수묵화, 지필묵으로 그린 일상사

전시 제목 ‘판타지’는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자유로이 작곡한 작품을 뜻하는 음악용어다. 제목처럼 이 전시는 자유롭게 재해석된, 작가 40명의 작품 42점을 소개한다. 1층 전시장에는 ‘산수화의 현대적 변용’이란 주제로 전통 산수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종이에 수묵으로 그려진 작품부터 산수를 영상으로 표현한 작품, 장지 위에 먹뿐 아니라 아크릴릭을 함께 사용한 작품 등 다양한 형태의 산수화들이 등장한다.

‘한국화 판타지’전에서 전시된 박노수의 ‘산’.

‘한국화 판타지’전에서 전시된 박노수의 ‘산’.

한기창의 ‘일필사의도’는 목판에 스테이플 침으로 산수 윤곽을 표현하고 그 위에 나비 영상을 비추는 작품이다. 지필묵을 사용하지 않고 현대적인 재료와 기술을 쓰고 있지만 조용하고 아련한 분위기가 무언가 ‘한국적인 느낌’을 만들어낸다. 점묵법 등 전통적인 기법은 그대로 사용하되 주변의 풍경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그려내는 박능생 작가. 그는 ‘남산이 보이는 풍경’에서 현대적이고 일상적인 풍경인 남산 주변의 모습을 화선지에 수묵으로 담백한 듯 표현했지만 묘하게도 화려한 도시 야경의 느낌 또한 살아있다.

1층 전시에는 실험정신이 가득한 젊은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전통 수묵산수화가인 변관식의 작품부터 해방 후 한국화 1세대로 불리는 박노수·서세옥의 작품, 이들을 사사해 좀 더 추상적이고 집약적인 작품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견작가 이종상·이철주 등의 작품도 전시되고 있다.

‘한국화 판타지’전에서 전시된 정유미의 ‘김치~’.

‘한국화 판타지’전에서 전시된 정유미의 ‘김치~’.

‘현대인의 일상’을 주제로 한 2층 전시에는 지필묵이라는 한국적 매체를 통해 현대인의 다양한 일상사를 보여주는 작품을 소개한다. 장재록과 이채영은 각각 천과 장지에 먹을 이용해 현대적 소재인 스포츠카와 주택 골목을 그렸지만 먹이 바탕에 스며드는 느낌이 살아있어 한국화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이응노·이왈종·정종미·이길우·정유미 등의 작품도 전시된다. 박이선 큐레이터는 “감각적이고,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한국화들을 선정해 전시했다”고 말했다. 10월17일까지.

■ 춘추

전통-현대 주제별 연결, 한국 미술 정체성 탐색

‘춘추’전에서 ‘무위자연’의 정서를 표현하는 작품으로 함께 배치된 한계륜의 영상설치 작품 ‘from right to left’.

‘춘추’전에서 ‘무위자연’의 정서를 표현하는 작품으로 함께 배치된 한계륜의 영상설치 작품 ‘from right to left’.

19세기 후반 작품으로 추정되는 작자미상의 ‘여인초상’. 얼굴은 미세한 선으로 그려 입체감을 살리고, 옷주름과 의자 등은 사실감있게 그려냈다. 곱게 단장한 모습과 야무진 표정이 지체 높은 여인임을 짐작케 한다. 조선시대 초상은 이처럼 터럭 하나도 똑같이 그리되 그 인물의 정신까지 담아내야 한다는 ‘전신사조’라는 가치를 갖고 있었다.

‘춘추’전에서 ‘무위자연’의 정서를 표현하는 작품으로 함께 배치된 황산 김유근의 ‘소림단학도’.

‘춘추’전에서 ‘무위자연’의 정서를 표현하는 작품으로 함께 배치된 황산 김유근의 ‘소림단학도’.

이 같은 전통이 현대에는 어떻게 표현됐을까. 전시는 이영빈 작가의 회화 ‘목욕탕’을 주목했다. 위에서 내려다본 듯한 모습의 목욕탕에 작가는 나체의 자기 자신을 배치한다. 겉치레 없는 몸은 작가의 솔직한 내면을 보여주고,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목욕탕 풍경은 왠지 쓸쓸한 작가의 마음을 드러낸다. 화면 위 붓질이 자기자신이기 때문에 작품에 굳이 서명하지 않는다는 작가는 자신의 성정을 나름의 방법으로 화폭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시대를 초월해 두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내면의 거울-회화’다.

현대미술을 상징하는 ‘춘(春)’과 고미술을 상징하는 ‘추(秋)’를 합친 전시 ‘춘추’는 한국 고미술 12점과 현대미술 작가 11명의 30여점을 주제별로 함께 배치해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찾아본다. 욕망에 가득한 인간군상이 포함돼 있는 신학철의 ‘6월항쟁과 7·8월 노동자대투쟁도’와 지옥도를 그린 작자미상의 18세기 그림 ‘명부시왕오도전륜대왕도’를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성찰’의 시각이 담긴 작품들로 함께 묶었다.

한 번의 붓질로 캔버스를 채우는 송현숙의 ‘1획 위에 5획’과 백하 윤순의 초서(18세기)는 ‘필(筆)의 기운’을 갖고 있는 작품으로 연결됐다. 김지연 전시기획실장은 “작품 소재와 기법 등 형식상 비슷한 점뿐 아니라 작가의 작업 태도,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 등 내용적인 측면에도 초점을 맞춰 한국성을 정의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작가로는 리경·윤석남·정주영·김홍주·한계륜 등이 참여했으며 이들 작품은 추사 김정희의 행서, 15~16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방목도’, 겸재 정선의 ‘인왕산도’, 석파 이하응의 ‘묵란첩’, 김유근의 ‘소림단학도’ 등과 함께 짝을 이뤘다. 10월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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