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지하철 빈민의 소외된 풍경 등 자본주의 속살 들여다보기

유인화 선임기자

‘서용선, 시선의 정치’전

서용선 작가가 지난해 겨울의 뉴욕 지하철 풍경을 담은 작품 앞에 서있다. 정체성을 상실한 사람들의 생기없는 표정이 강렬한 색채로 표현됐다.

서용선 작가가 지난해 겨울의 뉴욕 지하철 풍경을 담은 작품 앞에 서있다. 정체성을 상실한 사람들의 생기없는 표정이 강렬한 색채로 표현됐다.

그림 그릴 시간이 많지 않아 3년 전 서울대 교수직도 버렸다. 풍경이 되어버린 사람을 그리고 싶었다. 서용선 작가(60)는 이 땅의 이야기로 모자라 유럽과 미국, 중국과 일본 사람들의 세상 사는 얘기를 묵묵히 자신의 보따리에 담고 있다. 도시마다 풍경이 다르듯 사람들의 표정도 다르다. 이번에는 2년 동안 독일 베를린, 호주 멜버른, 미국 뉴욕의 풍경들을 통해 자본주의의 풍경들을 재해석했다. ‘서용선, 시선의 정치’전이 9일부터 4월10일까지 서울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학고재 본관에 들어서자 빨강·초록·파랑 등 원색으로 정의된 풍경 속 인간들이 어둡게 미소짓고 있다. 지난해 겨울 머문 뉴욕 풍경이다. 그림 속 뉴요커들은 세련되고 부유한 미국 사람이 아니라 음습한 지하공장에서 일하는 이주 빈민들이다. 지하철역에서 나지막이 속삭이는 그들의 암울한 풍경은 원색적인 색채의 강렬함과 투박하고 거친 붓작업의 속도감이 주는 에너지가 입혀져 그늘 속 인간들의 소외감과 익명성을 강조한다.

“지하철은 사람 몸속에 흐르는 핏줄 같습니다. 도시의 생명을 이어주는 피의 흐름 속에 사람들이 실려 있죠. 햇볕 없는 땅속에서 주어진 시간표대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몸은 공간과 공간을 잇는 메신저인 셈입니다.”

작가는 강렬하고 속도감 있는 붓작업을 통해 시각적 긴장감과 요란하게 덜컹거리는 기계의 차가움을 전한다.

신관 지하전시장으로 내려가면 가로 5m, 세로 4m의 대형 린넨천에 브란덴부르크, 러시아병사 조각상, 숲 등이 어우러져 그려진 ‘브란덴부르크 문’이 걸려 있다. 2003년과 2006년 베를린에 머물면서 이방인의 시선으로 작업한 역사 현장이다. 2003년 여름 체코 프라하에서 자신이 목격한 충격의 현장도 화폭에 담았다. 마피아들의 세력 다툼으로 총에 맞은 한 사나이가 뜨거운 피를 쏟아내며 도심에서 죽어가는 장면을 생생히 묘사했다. 지난해 여름 들렀던 멜버른의 거리와 카페 그림은 영국 식민지였던 호주만의 색채를 담았다.

“외국의 도시 풍경은 지역 구성원들의 개성에 따라 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멜버른의 경우 거주자의 절반이 아시아 사람이죠. 도심 한쪽의 작은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동양인들이 제 작품의 풍경이 되어 주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만든 거리보다 사람들이 드러내는 삶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작가는 그림마다 작업한 날짜를 기록하고 있다. ‘2010. 10. 30.~11/9.11.13.’ ‘03. 8.6. 7. 16’ 등 일기를 쓰듯 꼬박꼬박 그림 그린 날을 기록해 작품의 완성 과정과 현장성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에 맞춰 서용선 작가의 작품 철학을 책으로 엮은 정영목 서울대 교수의 <시선의 정치-서용선의 작품세계>(학고재)도 출간됐다. (02)720-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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