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부터 4년 만의 개인전
그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화면에서 멀리 떨어졌다, 가까이 다가갔다를 반복해야 한다. 멀리서는 그저 단색화이지만 자세히 보면 화면 속의 많은 색층들, 벌집 같은 수천개 공간이 어우러져 묘한 리듬감을 전하기 때문이다. 큰 틀에서는 그저 딱딱한 격자무늬의 조합인데 화면 속으로 파고들수록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바로 김태호 작가(66·홍익대 교수)의 추상작업이다. 유진상 평론가(계원예술대 교수)는 “그의 작품은 보는 위치와 거리에 따라 상이한 면들이 떠오른다”며 “5m, 2m, 50㎝ 거리에서 관람했을 경우 모두 다르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10년 넘게 ‘내재율(Internal Rhythm)’ 연작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무서우리만치 집중적인 노동과 함께 치밀함을 요구한다. 먼저 캔버스에 격자 선을 긋고 선을 따라 일정한 호흡으로 물감을 붓으로 쳐올린다. 한 물감이 마르면 다음 물감으로 이어져 보통 20여번에 이른다. 20여가지 물감층이 쌓이면 다시 조금씩 깎아낸다. 쌓였던 다양한 색들이 언뜻언뜻 드러나면서 독특한 색조와 더불어 질감이 만들어진다. 색층을 쌓을수록 격자 가운데 손톱보다 작은 벌집 같은 방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방의 크기와 색감·질감은 작가만의 조형언어로 변주된다.
작가는 “방 하나하나에서 생명을 뿜어내는 우주를 본다”고 말한다. 오광수 평론가는 “긁어냄으로써 얻어지는 미묘한 물감층의 리듬과 색깔들이 만드는 신비한 광채, 방들의 내밀한 구성이 자아내는 웅장한 합창, 덕지덕지 쌓아올린 물감층 내면에 끊임없이 생성되는 생명의 리듬”이라고 김태호의 작품을 강조한다.
김 작가가 14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4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100호 이상 대작들을 중심으로 한 작품전이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최소한 2개월여의 시간과 노동, 30갤런 이상의 물감이 들어간다. 치열한 장인정신을 보여주며 그가 천착하는 시리즈 ‘내재율’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자리다. 작가는 “작품들이 관람객에게 잠시라도 사색의 시간을 갖게 했으면 좋겠다”고 담담히 말한다. 온갖 다양하고 미묘한 맛을 지닌 그의 작품 감상은 관람객의 몫이다. (02)732-3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