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미술의 최전선에서, 상업성에 물들지 않고 ‘한 길’

김종목 기자

아트선재센터 20년 ‘커넥트…’ 출간

아트선재센터는 20여년의 한국 안팎의 동시대 미술을 가장 활발하게 소개했다. 왼쪽부터 1995년 ‘싹’전에 나온 최정화의 ‘그럴듯한 깨달음’, 1998년 이불 개인전의 ‘사이보그’ 및 ‘몬스터’ 연작, 2003년 구사마 야요이 개인전의 ‘뉴 센추리’, 마틴 크리드 개인전 설치 전경. 아트선재센터 제공 사진 크게보기

아트선재센터는 20여년의 한국 안팎의 동시대 미술을 가장 활발하게 소개했다. 왼쪽부터 1995년 ‘싹’전에 나온 최정화의 ‘그럴듯한 깨달음’, 1998년 이불 개인전의 ‘사이보그’ 및 ‘몬스터’ 연작, 2003년 구사마 야요이 개인전의 ‘뉴 센추리’, 마틴 크리드 개인전 설치 전경. 아트선재센터 제공

김선정(광주비엔날레 재단 대표이사)이 아트선재센터 큐레이터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다 멈칫했다. 울음을 참으려 손으로 입을 막고 말을 이어갔다. “그 많은 큐레이터분들이 없었다면 오랫동안 지금처럼 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19일 서울 아트선재센터(이하 센터) 아트홀에서 열린 <커넥트 : 아트선재센터 1995~2016> 출간 토크 행사장에서 김선정은 20여년을 함께한 사람들, 역사를 떠올리다 울컥했다.

센터는 1998년 대우재단 산하인 경주 선재미술관의 서울 분관으로 설립됐다. 그해 7월9일 개관전 ‘반향’을 열었다. 김환기, 박수근, 유영국 등 선재미술관 소장품을 추려낸 회화전은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한국 현대미술사에 기록된 전시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센터 부지의 한옥과 양옥에서 열린 ‘싹’전은 동시대 미술 전시에서도 손꼽힌다. 김선정이 ‘큐레이터’로서 인정받은 전시다. 고낙범, 박모(박이소·1957~2004), 박소영, 안규철, 오형근, 육근병, 윤석남, 이동기, 이불, 최정화…. 대부분 20~30대였던 참여 작가는 지금 미술계 주류로 활동한다.

작품은 파격적이었다. 최정화는 플라스틱 변기 커버 안에 김치나 알약 같은 음식·약물 사진을 채운 ‘그럴듯한 깨달음’을 대청마루에 놓았다. 이불은 반짝거리는 얇은 장식 조각 스팽글 수십개를 박은 날생선을 유리 박스 안에 둔 ‘장엄한 광채’를 출품했다. 페미니즘 미술 1세대 작가 윤석남도 ‘어머니의 방’을 설치했다. 박이소는 세잔이 현대미술에 끼친 영향을 돌 테이블에 구현한 ‘세잔의 무게’를 내놓았다. 미술관은 “민중미술 영향을 받아 사회에 비판의식을 갖고 있으나, 민중미술과 달리 간접적 방법으로 정치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 여러 분야를 다룬 전시”라고 소개했다. ‘설치미술’이 익숙지 않을 때다. ‘희한한 전시회’ ‘퇴행적 설치 현장’이란 조소와 비난이 뒤따랐다.

센터의 준거가 된 전시다. 매체 면에서 설치나 영상, 퍼포먼스 등 비전통적 매체 위주의 지향을 예고했다. 내용 면에서는 “변화, 혼합, 혼돈, 희망 등 당시 가장 동시대적인 한국의 미와 정신을 담”았다. 미술관 공간에 얽매이지 않았다. ‘싹’전은 철거 건물을 활용한 ‘장소 특정적 미술’이었다. 1999년 ‘주차장 프로젝트’는 센터 주차장에서 열었다. 노순택 등이 참여한 ‘배너 프로젝트’(2013~2014)는 건물 외벽이 전시공간이었다. 예술의 일상화를 추구한 기획이다.

‘복합예술공간’을 지향했다. 영화 <바스키아>를 상영했고, 음악제 ‘윤이상을 추모하며’를 열었다. 열린 공간이었다. 1998년 ‘제1회 서울 퀴어영화제’ 개최지도 이곳이다. 사회학자 서동진은 “퀴어영화제란 말만 들어도 경악하는 세상에서 선뜻 극장을 대관하겠다는 곳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지만 센터는 영화제가 둥지를 틀 곳을 기꺼이 내주었을 뿐 아니라 거의 무료에 가까운 대관료로 영화제를 응원해주었다”고 떠올렸다.

센터 20년을 두고 “개관 이래 지속적으로 장대한 비전과 국제적 시각을 견지했으며, 이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전환해왔다”(도쿄 모리미술관 선임 큐레이터 가타오카 마미) 같은 평이 나온다. 영국 터너상 수상자인 마틴 크리드 등 해외 실력파 작가들을 앞장서 초대했다. 최대 관람객을 모은 2003년 구사마 야요이 개인전은 팝아트 붐이 일기 전에 개최한 것이다.

2014년 노순택의 배너 프로젝트 ‘살려면 vs 왔으면’. 아트선재센터 제공

2014년 노순택의 배너 프로젝트 ‘살려면 vs 왔으면’. 아트선재센터 제공

미술관은 스스로가 부자이거나 부자들의 컬렉션을 선보일 때가 많다. 센터는 재벌(대우그룹) 소유 미술관으로 출발하고도 여느 재벌 미술관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상업성에 물든 적도 없다. 1990년대 후반 대우사태가 터지고도 동시대 미술의 최전선을 걸었다. 2017년 3월 대우그룹 창립 50돌을 맞아 개최한 ‘기업보고서-대우’전은 그래서 ‘옥의 티’로 남는 전시다. 김선정은 대우그룹 전 총수 김우중의 장녀다.

이후 기획전을 보면 ‘아트선재’다운 전시를 이어간다. 공동체의 소통 가능성을 탐구하는 안젤리카 메시티를 초대했고, 전시공간 형태를 재료로 삼은 국내 작가 그룹전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를 열었다.

대중과의 접점을 찾기 쉽지 않은 동시대 미술과 담론에 천착하는 미술관의 미래는 어떨까. 19일 토크쇼에는 50명 남짓한 인원만 참석했다. 작가 김홍석은 “제자리에 있어주는 게 중요하다. 해오던 대로 유지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고 말했다. 김선정이 광주비엔날레 총괄 큐레이터로 간 뒤 부관장을 맡은 김해주는 “비관적이지 않으려 한다. 좋은 전시를 하려는 의지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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