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변 전시같은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문화역서울 284 'DMZ'전

홍진수 기자
지난 20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디엠지’(DMZ) 전시에 철조망 모형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디엠지’(DMZ) 전시에 철조망 모형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전시다. 총괄 기획은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가 맡았다. 장소는 구 서울역 역사인 ‘문화역서울 284’다. 전시 주제인 DMZ(비무장지대)는 현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남북관계 개선’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자료만 보면 이른바 ‘관변 전시’ 냄새가 풀풀난다.

그러나 참여 작가 명단은 이 전시를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게 만든다. 이불, 민정기, 안규철, 김선두, 노순택, 김정헌, 임민욱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작가들이 여럿이다. DMZ란 동일한 주제를 놓고 예술가 50여명이 나섰다 하니 과연 어떤 작품이 나와있을 지 궁금하다.

급조한 전시는 아니다. 김선정 대표는 매년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강원도 일대에 모여 ‘리얼DMZ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DMZ의 역사성과 공간적 특성을 연구한 뒤 이를 전시로 풀어낸 ‘리얼DMZ 프로젝트’는 이번 ‘DMZ’ 전시의 토대가 됐다. 공동기획자로 나선 김 대표는 지난 20일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의 ‘리얼DMZ 프로젝트’가 해당 장소가 내재한 힘을 갖고 진행됐다면 이번에는 다른 장소에서 다양한 매체를 망라해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디엠지’(DMZ) 전시간담회에서 안규철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DMZ에서 철거된 철조망의 잔해를 녹여서 종을 만들고, 감시탑 형태로 종탑을 만들었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디엠지’(DMZ) 전시간담회에서 안규철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DMZ에서 철거된 철조망의 잔해를 녹여서 종을 만들고, 감시탑 형태로 종탑을 만들었다. 연합뉴스

역사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전시관 1층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7.2m 짜리 종탑이다. 안규철 작가는 지난해 DMZ 내 감시초소(GP) 철거 과정에서 나온 철조망을 녹여 종을 만들어 달았다. 나무로 만든 붉은 종탑도 감시탑을 본땄다. 작품 이름은 ‘DMZ 평화의 종’이다.

종소리는 기대와 달리 둔탁하다. 안 작가는 “청동으로 만들어야 맑은 소리가 나는데 철조망은 철로 되어 있어 그렇다”며 “그나마 망간 등을 섞어 다시 만드니 소리가 좀 나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철조망이나 장벽을 녹여 사람을 모으는 소리로 만들고 싶었다”며 “소리는 남북의 경계가 없이 퍼져나간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주최한 문체부는 국방부 협조를 얻어 트럭 2대 분량의 GP 잔해를 받은 뒤 원하는 작가들에게 나눠줬다. 오는 5월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 받은 이불 작가도 GP 철조망 등을 이용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디엠지’(DMZ) 전시 간담회에서 이불 작가가 ‘오바드Ⅴ를 위한 스터디’를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0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디엠지’(DMZ) 전시 간담회에서 이불 작가가 ‘오바드Ⅴ를 위한 스터디’를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 모형을 미리 선보였다. 베니스에 가져갈 작품 ‘오바드Ⅴ’는 7개 날개를 가진 대형 탑이다. 철조망을 녹여 지름 3m, 높이 4m 정도로 제작할 예정이다. 스티로폼으로 만든 모형 ‘오바드 V를 위한 스터디’를 보면 완성작의 모습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오바드(Aubade)는 ‘새벽의 노래’란 의미의 프랑스어다. ‘저녁에 부르는’ 세레나데와 대칭된다. 이 작가는 “세레나데가 구애라면 오바드는 밤새 사랑을 나눈 연인이 아침이 돼 이별할 때 부르는 노래”라며 “제가 그동안 하던 작업 중 하나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이를 포함해 3점을 낸다”고 말했다. 이어 “오바드Ⅴ는 7개 날개 사이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판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5개 구역으로 나눠 구성됐다. 1층에는 ‘DMZ, 미래에 대한 제안들’, ‘전환 속의 DMZ: 감시초소(GP)와 전망대’, ‘DMZ와 접경의 삶: 군인, 마을주민’, ‘DMZ의 생명환경’을 주제로한 작품과 자료가 나오고, 2층에서는 ‘DMZ, 역사와 풍경’이 전시장을 꽉 채운다.

김선두 작가의 ‘2월’/문화역서울 284 제공

김선두 작가의 ‘2월’/문화역서울 284 제공

김선두 작가가 내놓은 ‘2월’이란 작품은 이번 전시에 나온 유일한 한국화다. 김 작가는 “1986년 초겨울, 군사기초훈련을 마치고 부대배치를 받은 곳이 중서부전선이었다”며 “부대장에게 전입신고를 하기 위해 OP(관측소)가 있는 산봉우리에 오르니 날카로운 쇳소리의 북쪽 여자 목소리가 전선의 적막함을 깨뜨리고 있었다. 이는 지금도 가장 인상깊게 남아있는 전선의 한 장면인데, 풍경이 아니라 소리였다”고 말했다. 작품 ‘2월’을 보면 추우면서도 봄이 느껴진다. 대남방송의 쇳소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바람소리가 채웠다.

정연두 작가의 ‘을지극장’/문화역서울 284 제공

정연두 작가의 ‘을지극장’/문화역서울 284 제공

정연두 작가는 최전방에 있는 ‘안보전망대’들을 극장으로 설정한 연작을 이번 전시에서도 이어간다. ‘을지극장’은 강원도 양구 을지전망대가 배경이다. 빨래를 하고 있는 배우 뒤로 보이는 빨래줄에는 파란색 여자수영복과 북한 군복이 나란히 걸려있다. 정 작가는 “과거 (휴전선 인근) 북쪽에 있는 선녀폭포에서 북한 여군이 목욕을 하면서 심리전을 펼치자 남한에서는 아예 수영장을 만들어 미스코리아 대회를 열었다는 이야기에서 착안했다”며 “남북한의 군인들이 서로를 관찰하는 아이러니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서울역에 간 김에’, ‘열차탑승까지 시간이 남아서’ 들러볼 수도 있는 전시지만 1~2시간은 여유를 갖고 찾아가기를 권한다. 시간을 정해놓지 않고 둘러보면 DMZ라는 동일한 주제가 각기 다른 경험과 생각을 갖고 있는 작가들을 통해 어떤 작품이 되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입장료는 없다. 전시는 5월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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