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에서 수평으로 화면이 변한 이유···학고재 갤러리 ‘픽처 플레인’전

홍진수 기자
프랑수아 모를레의 ‘테이블이 중심에서 3도 회전되기 전 중앙값 90도 표시’( 1980) 학고재 제공

프랑수아 모를레의 ‘테이블이 중심에서 3도 회전되기 전 중앙값 90도 표시’( 1980) 학고재 제공

그림 앞에 서니 자연스럽게 고개가 왼쪽으로 쏠린다. ‘왜 캔버스가 기울어져있지?’ 다시 보니 캔버스 가운데를 가르는 직선은 정확히 수직방향이다. 이 그림을 ‘똑바로’ 걸려면 캔버스 자체를 기준으로 잡아야 할까, 캔버스 안 그림(그래봤자 선 하나 뿐이지만)에 맞춰야 할까.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학고재 갤러리에서 막을 연 기획전 ‘픽처 플레인(Picture Plane)’에 나온 프랑수아 모를레의 작품은 지나가는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이래도 안볼거야’라고 묻는 듯 하다. 작품 제목은 ‘테이블이 중앙에서 3도 회전되기 전 중앙값 90도 표시’. 작품 자체보다 제목이 더 어렵다.

‘픽처 플레인’에 나온 작품은 32점이다. 개인전으로도 채울 수 있는 수다. 그런데 작가는 12명이나 된다. 20세기 현대미술을 이야기할 때 빈번하게 등장하는 작가들을 다양하게 모았다. 모를레를 비롯해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 윌렘 드 쿠닝, 알렉산더 칼더, 알렉스 카츠, 로버트 라우센버그, 앤디 워홀, 게르하르트 리히터, 시그마 폴케, 데이비드 호크니, 나라 요시토모, 스털링 루비 등이 이름을 올렸다. 한 작가의 작품을 깊게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현대미술 전반의 변화가 한 눈에 들어온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 전시는 ‘시선의 변화’를 주제로 삼았다. 박미란 학고재 갤러리 큐레이터는 “태초에는 땅에 그림을 그렸다가, 인간이 직립해 걷기 시작하면서 동굴 벽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것”이라며 “르네상스에서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형상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머리를 위로, 발을 아래로 향하는 수직의 화면 위에 놓였다”고 말했다. 이어 “회화의 주제가 자연에서 문명으로 이행하면서 작업화면의 전환도 일어났다”며 “이번 전시는 작업화면의 위치, 즉 예술가의 관점 변화를 단서로 현대미술의 흐름을 짚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의 ‘얕은 욕조 안의 두 소녀’(1912-1913) 학고재 제공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의 ‘얕은 욕조 안의 두 소녀’(1912-1913) 학고재 제공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의 ‘드레스덴의 노란 집 앞 선박들’(1909) 학고재 제공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의 ‘드레스덴의 노란 집 앞 선박들’(1909) 학고재 제공

자연스럽게 동선을 따라 이동하다보면 어렵지 않게 주제를 따라갈 수 있다. 가장 먼저 만나는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1880~1938)의 작품 ‘얕은 욕조 안의 두 소녀’는 완벽한 수직화면이다. 세로가 가로보다 1.5배 길다. 이 작품은 사실 ‘두겹’으로 되어 있다. 키르히너는 이미 누군가 사용한 캔버스의 뒷면에 ‘드레스덴의 노란 집 앞 선박들’이란 작품을 그렸다. 그리고 같은 캔버스의 앞면에 덧칠을 한 뒤 그 자리에 ‘얕은 욕조 안의 두 소녀’를 8여년 동안 그려 완성했다. 가난 때문이었다.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반블랙 시리즈 Ⅵ’. 자연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정보와 이미지를 나열했다. 학고재 제공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반블랙 시리즈 Ⅵ’. 자연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정보와 이미지를 나열했다. 학고재 제공

홀 안쪽에 전시된 로버트 라우센버그(1925~2008)의 그림은 벽에 걸려있지만 땅에 펼쳐놓는 것이 더 어울려 보인다. 라우센버그는 195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서막을 연 작가라고 한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회화라기 보다는 이미지들을 나열한 것에 가깝다. 이른바 ‘콤바인 페인팅’이라는 기법인데, 라우센버그는 196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회화 부분 대상을 타며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라우센버그의 캔버스 속 이미지는 자연을 재현한 것이 아니다. 정보와 자료를 보여주는 것이다. 박미란 큐레이터는 “라우센버그의 ‘반 블랙 시리즈’는 인물을 암시하는 천 조각을 모아 퀼트처럼 짜깁기한 일종의 초상화”라고 설명했다.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 ‘빨간 초승달’(1969) 학고재 제공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 ‘빨간 초승달’(1969) 학고재 제공

‘움직이는 조각’ 역시 인간의 시각을, 또 미술의 지평을 더 넓혔다. 미국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1898∼1976)가 붙인 ‘모빌’이란 이름은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 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칼더의 1969년작 ‘빨간 초승달’을 볼 수 있다. 또 1936년에 제작된 스테빌 ‘더 클로브’도 함께 전시됐다. 스테빌은 ‘정지된 조각’으로 모빌의 상대적 개념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거의 스키 타듯이’(1991) 학고재 제공

데이비드 호크니의 ‘거의 스키 타듯이’(1991) 학고재 제공

알렉스 카츠의 ‘아리엘’(2015)  학고재 제공

알렉스 카츠의 ‘아리엘’(2015) 학고재 제공

지난 4월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큰 인기를 모은 데이비드 호크니(82)의 그림 ‘거의 스키 타듯이’(1991), 2007년 독일 쾰른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작업과 이어지는 게르하르트 리히터(87)의 색채 그리드 ‘25색’ 등 현재도 명성을 떨치는 생존작가 작업도 볼 수 있다. 알렉스 카츠, 시그마 폴케, 앤디 워홀, 나라 요시토모, 스털링 루비, 빌럼 더 코닝(빌렘 데 쿠닝) 작업도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학고재와 유럽의 수잔 반 하겐 콜렉션이 공동기획했다. 수잔 반 하겐은 런던과 파리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이자 소장가다. 전시는 7월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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